<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찰리 맥커시
여러분 계신 곳의 날씨는 어떠한가요? 이곳은 마치 열대지방처럼 강한 비가 쏟아졌다가 갑자기 쨍하게 개기도 하고요. 며칠간 해 한 번 볼 수 없을 만큼 흐린 날들이 이어지며 엄청난 양의 비를 갑자기 쏟아붓기도 합니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 때문인지 기분도 오락가락한 날들이 이어져요. 사람이 날씨의 영향을 이렇게 많이 받는 존재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끼는 여름날입니다.
독서 인구가 계속해서 줄고 있다는 소식은 많이들 들어보셨을 거예요. 실제로 제 주변에서도 한 달에 한두 권도 읽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시간이 없기도 하고, 책 보다 재밌는 일들이 더 많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는 일이 넷플리스를 보는 일보다 재밌기도 하고요. 그렇다 보니 제가 꿈꾸는 진짜 휴가는 이런 모습입니다.
읽고 싶었던, 읽으려던, 읽지 못했던 책들을 잔뜩 쌓아놓고 종일 밥 대신 여름 과일들을 먹으며(네, 저는 밥보다 과일을 더 좋아합니다.) 읽고 또 읽는 것.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나조차 나를 방해할 수 없을 만큼 작은 걱정, 고민, 근심도 모조리 내려놓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앉아서도 읽고 엎드려서도 읽고 누워서도 읽는 것. 그러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필사를 하거나, 사진을 찍어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호들갑을 떨며 전송하는 것. 단 하루라도 그런 휴가를 보낼 수 있다면.
그런 상상만으로도 괜히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책은 바로 그런 휴가에 꼭 동행하고 싶은 책이에요. 휴가지에서도 손 닿는 곳에 놓고 수시로 펼쳐보고 싶은 책, 노곤하게 낮잠에 빠지기 직전 문득 한 페이지를 펼쳐본 뒤 그 페이지 위에 가만히 손을 포개놓고 잠들고 싶은 책. 바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입니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은 꽤 유명한 그림책이에요. 들어보신 분들도, 이미 읽어보셨거나 소장하신 분들도 많으실 것 같아요.(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요? 처음이신 분들을 위해 먼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그림책’이라는 카테고리에 편견을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림책은 애들이나 읽는 거지’라는 편견이요.
이 책은 어떤 긴 소설보다도, 에세이보다도, 인문학서보다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줄거리라면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 차례로 길에서 만나, 소년이 집을 찾아가는 여정에 동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줄거리라고 할 것도 없지요? 이 책은 줄거리가 중요한 책이 아닙니다. 그 여정에서 소년과 두더지가, 여우가, 말이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는데 그 대화 자체가 중요한 책이에요.
무언가를 잃은 것 같고, 방황하고, 두려워하고, 경계하고, 불안한 마음을 지닌 누구에게도 위로가 될 법한 대화가 계속 이어집니다. 어떤 말은 듣기에 따라서 너무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진리는 대체로 진부한 말들이지요. 너무 당연하고 익숙해서 별 것 아닌 것처럼 들리는 말들이 때론 가장 중요한 말일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며 때마다 큰 위로를 받았어요. 얼어버린 마음을 단숨에 녹이고, 찬바람 부는 시간을 단번에 온기 어리게 바꾸는 마법 같은 대화들을 몇 개만 보여드릴게요.
어떠신가요? 저는 굉장히 외롭고 아플 때 이 책을 만났어요. 그래서인지 이 책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괜히 울컥하는 마음이 됩니다. 이 책 덕분에,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의 대화 덕분에, 무사히 넘어간 그 시기가 떠올라서 그런가 봐요.
만약 반대로 ‘아주 싱그럽고 행복한 시기에 이 책을 만났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랬더라도 저는 아마 이 책을 사랑했을 거예요. 그만큼 자주 품었을 것 같고요. 읽는 내내 나를 행복하게 하는 친구들을 떠올리고, 나를 싱그럽게 하는 시간들을 생각했을 테니까요. 이 책에서 보여주는 사랑과 우정, 길과 자아 찾기, 소중한 것과 잃지 않아야 할 것들에 관한 이야기는 어떤 상황에서 읽더라도 큰 울림이 있었을 겁니다.
덥고 습한 여름날, 길고 복잡한 책에는 더 손이 닿지
않지요. 휴가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더더욱 책에 마음 둘 틈도 없으실 거고요. 딱 지금 같은 때에, 가볍게 쥐었다가 가슴 깊이 끌어안게 되는 책 한 권 어떠신가요? 우리 같이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의 여정에 동행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