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사랑이 가득 담긴, 떡국 한 그릇

by 진아

서재에서 신랑이 어머님과 통화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신랑은 거실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던 내게 물었다.



“여보, 엄마가 떡국 먹으러 오려면 오라는데?”

“응? 며칠 전에도 어머님 댁에서 저녁 먹었잖아. 어머님 힘드셔.”

“엄마는 괜찮대. 떡국 꾸미(어머님은 고명을 꾸미라고 하신다) 만들 거리 사다 놨다고 와서 먹고 가려면 오라는데 어쩔래?”

“어머님께 죄송해서 그러지.”

“괜찮다니까.”

“알겠어. 그럼 애들 준비시킬게.”


“엄마, 우리 준비해서 갈게요.”



안 그래도 저녁은 또 뭘 해 먹나 고민하던 참이었다. 놀고 있던 아이들에게 급하게 옷을 입혀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시댁으로 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벌써 떡국을 준비하고 계셨던지 진한 육수의 향이 코끝을 찔렀다. 음식을 하시다 그대로 뛰어나오신 어머님은 두 손을 어색하게 든 채로 “아이고, 우리 사랑이랑 봄이 왔나! 진아도 왔나. 빨리 들어오너라.”라며 인사말을 건네시고는 급하게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어머님께서는 우리가 온다고 한 뒤로 바로 떡국 준비를 하셨던지 이미 주방에는 떡만 넣어 끓여 내기만 하면 되도록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다. 고기와 두부로 만들어진 고명과 달걀지단, 물에 헹궈 낸 떡국 떡, 하나하나 손수 손질하진 육수용 멸치와 표고버섯, 파, 양파, 다시마를 넣고 끓여 낸 떡국용 육수까지!


“진아야, 바로 끓이면 되겠나?”

“아, 네. 어머님, 애들도 배고플 것 같아요.”

“알았다. 내 금방 끓일게.”



나와 신랑이 아이들을 챙기느라 정신없는 동안 어머님은 물에 헹군 떡을 육수에 넣고 아이들까지 먹을 수 있도록 푹 끓여 내셨다. 그리고는 우리 부부 것은 큰 냉면 그릇에, 두 아이 것은 하얀 사기그릇에 가득 담으셨다.


“진아야, 꾸미는 너거 먹을 만큼 얹어라.”

“네, 어머님.”

“꾸미는 이거는 너거들 거고, 그 옆에 건 사랑이 거, 그 옆에 거는 봄이 거다.”

“어머님, 또 다 따로 만드셨어요? 어머님 힘드신데...”

“뭐가, 안 힘들다. 그래도 사랑이랑 봄이는 간을 다르게 해야 안 되나. 너거랑 같은 간으로 만들어서야 되나.”

“봄이 것까지 따로 만드시지는 않아도 되는데……. 봄이 것까지 따로 만드셨어요?”

“네 살짜리랑 이제 돌 지난 아랑 어째 똑같은 걸 먹이겠노.”

“집에서는 다 같은 거 먹여요. 어머님, 힘드신데 다음에는 그냥 같이 만들어주셔도 돼요.”

“알았다. 떡국 식으면 맛없다. 얼른 꾸미랑 지단이랑 김이랑 얹어 가서 먹어라. 많이 얹어 가라. 그나저나 진아 니, 얼굴이 너무 안 좋네. 아들한테 시달려서 그렇제? 많이 먹어라, 많이.”



나는 어머님이 끓여주신 떡국 위로 고명과 지단을 올리며, 서로 다르게 간이 된 세 고명이 제 그릇에 담기도록 신경을 썼다.


어머님의 따뜻한 떡국 한 그릇을 받아 드니 며칠 동안 제대로 된 밥을 못 먹은 설움이 다 씻기는 기분이었다. 고명과 지단이 떡보다 더 많이 들어있는 어머님표 떡국은 사진을 찍으면 백화점 한식당에 전시되어 있는 떡국 모형과 거의 흡사하다. 어머님표 떡국은 그냥 반찬이 없을 때 한 끼 대용으로 해 먹는 떡국과는 차원이 다른, 일품요리 그 자체였다.




시어머니의 떡국을 처음 먹었던 것은 결혼 후 처음 맞는 설날이었다. 어머님은 자신의 살림에 누가 손대는 것이 싫다는 핑계를 대시며, 거실 바닥에 방석을 깔아주시고는 첫 명절이라고 한복까지 차려입고 온 나에게 편하게 앉아 있으라고 하셨다.

명절 음식은 안 하실 거라고 절대 설 전날 미리 오지 말라고 하셔서 나와 신랑은 둘이서 시간을 보냈었는데 막상 명절 당일에 갔더니 잡채에 불고기에 간단한 튀김과 나물까지 만들어놓으셨었다. 도와드렸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냐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더니 그럴까 봐 미리 연락 안 했다고 하시며 도울 거 하나도 없다고, 한 것도 없다고 하시며 손사래를 치셨다. 그러면서 준비한 음식들과 함께 막 끓여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 한 그릇을 내어주셨다.


그때 처음 마주한 어머님표 떡국은, 32년 간 내가 먹던 떡국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달걀 흰 자와 노른자가 정확히 분리된 정갈한 지단과 김가루는 그렇다치더라도, 고기와 두부로 만든 고명은 낯설기 그지없었다. '떡국에 두부라니?이건 뭐지?'


고명의 양도 떡이 보이지 않을 만큼 듬뿍 얹어져 있어서 그냥 봐서는 이게 떡국인가 싶었다. 고명이 올려진 모습은 또 어찌나 정갈한지, 마구 뒤섞어 먹기가 조심스러울 정도였다.


친정에서의 떡국은 특별한 찬이 없을 때 엄마가 후루룩 끓여서 내어주는 음식이었다.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떡을 넣어 끓이다가 떡이 익으면 달걀을 빙 둘러서 풀어주고 마지막에 파와 깨를 넣어서 후다닥 만드는 그런 음식이었다. 나는 “엄마, 라면 하나만 끓여줘.”라는 말과 비슷한 느낌으로 “엄마, 떡국 끓여줘.”라는 말을 했었다. 내 말에 엄마는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떡을 꺼내 금세 떡국 한 그릇을 내어주었었다.


그런데 시댁에서 첫 명절에 어머님께 받은 떡국은 아주 특별한 음식처럼 보여서 이걸 숟가락으로 막 휘저어 먹어도 되나 싶었다. 아버님께서는 아주 익숙한 모습인 듯 잠깐의 감동도 없이 숟가락으로 휙휙 저어 한입 크게 드셨다. 이내 신랑도 그렇게 먹었다. 나는 떡과 고명을 막 뒤섞기가 아무래도 조심스러워 먼저 떡국의 국물을 조금 떠서 입에 넣어보았다. 따뜻했고, 부드러웠고, 싱거웠다. 하지만 그 싱거움이 맛이 없는 느낌이 아니라, 아주 깊은 맛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맛이었다. 끝내 나는 고명과 떡을 마구 뒤섞지 못하고 어설프게만 섞은 채로 고명과 떡을 조금씩 함께 떠서 먹었다. 평소 내가 먹던 떡국 한 그릇과 비교하면 1.5배는 되는 양이었을 듯한 그 한 그릇을, 꼭꼭 씹어서 다 먹었다.




명절을 보내고 집에 와서부터 이상하리만큼 자주 그 떡국 생각이 났다. 신랑에게 시댁에서 먹은 그 떡국을 어떻게 만드는 거냐고 물어봤더니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평생 먹고 산 것일 텐데 어떻게 끓이는지 모른다니! 결국 나는 용기를 내어 다음번에 어머님을 만나 뵈었을 때 여쭈어보았다. 어머님은 진짜 별 것 없다고 하시며 떡국 레시피를 알려주셨다.


1. 멸치와 파, 양파, 표고버섯, 다시마를 넣어서 육수를 끓여 낸다.
2. 달걀지단을 부친다.(이건 그저 요령이라고 하셨다. 자꾸 하다 보면 는다고만 하셨다. 나는 여전히 지단을 못 부친다.)
3. 소고기 다짐육을 들기름에 볶다가 어느 정도 익으면 물을 자작하게 붓고 국간장을 넣는다. 그리고 두부를 잘게 큐브 모양으로 썰어 넣고 두부에 간이 배도록 뚜껑을 덮고 끓인다. 기름이 뜨면 덜어내고, 자작했던 국물이 거의 졸아들 때까지 끓여 고기 두부 고명을 만든다.
4. 육수에 떡을 넣어 푹 끓여 내는데, 이때는 따로 간을 하지 않는다.
5. 떡국을 그릇에 담고, 고기 두부 고명을 한 국자 크게 올린 뒤, 지단을 예쁘게 놓고 김가루를 넣는다.


어머님 떡국의 국물을 처음 한 숟가락 떠먹었을 때 간이 싱겁다고 느꼈던 것은 떡국 자체에 간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대신 떡국과 고기 두부 고명을 섞었을 때 전체적인 간이 맞도록 하는 것이 어머님표 떡국의 간하는 방법이었다. 첫 명절 때 떡과 고명을 충분히 뒤섞지 않고 먹었으니 싱겁게 느껴진 것이 당연했다.

나는 그 뒤로 정육점에 가면 자주 다짐육을 사 왔다. 그리고는 고기 두부 고명을 만들어 냉장고에 그득그득 넣어두었다. 그리고 반찬이 없을 때 우리 엄마가 그랬듯 떡국 한 그릇을 후루룩 끓여 냈다. 빠르게 끓여 낸 떡국이라고 하기에는 고명이 충분히 올라가서 그런지 영양가도, 정성도 가득한 음식으로 보였다. 입이 짧은 신랑과 어린 두 아이까지도 모두 떡국을 좋아해서 일주일에 두어 번은 어머님께 전수받은 떡국을 끓이는데, 아무리 열심히 흉내를 내보아도 어머님표 떡국 맛은 흉내 내기가 어려웠다. 같은 재료, 같은 순서로 끓이는 데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끓여 내는 떡국을 내가 처음 접했던 것도 어머님이 끓여주신 것이었지만, 사랑이와 봄이에게는 인생 첫 떡국이 어머님이 끓여주신 것이었다. 그 떡국은 어린 손주들에게 우리와 같은 것을 먹일 수는 없다고 하시며 일일이 따로 간을 해서 만들어낸 고기 두부 고명을 가득 얹어낸 떡국이었다. 대충 달걀을 풀어내도 될 것을 아이들이 지단을 좋아한다고 하시며, 일일이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하여 테두리까지 새하얗고 샛노랗게 잘 구워진 지단을 듬뿍 올린 떡국이었다. 혹시나 식은 떡국을 먹이게 될까 봐, 아들 내외와 손주들이 식사 준비를 오래 기다릴까 봐, 미리 모든 준비를 해 둔 채로 우리가 집에 들어서는 것을 보시고야 육수에 떡을 넣어 끓여 낸 떡국이었다.


그냥 한 끼 식사용 떡국이 아니라,
그 자체가 어머님의 사랑이었다.


내가 그런 어머님 마음의 깊이를 어떻게 따라갈 수가 있을까, 내가 끓인 떡국에서 어머님 떡국 맛이 그대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오늘도 서로 다른 간을 한 고명 한 국자와 하얗고 노란 지단을 듬뿍 올린 어머님표 떡국을 아이들과 내 앞에 각각 놓으며 어머님의 마음을 생각했다.


서로 다른 세 종류의 고명과 달걀지단에 담긴 어머님의 마음에 더불어,

며느리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나에게는 저녁 먹으러 오라는 전화조차도 절대 먼저 하지 않으시는 어머님의 마음을,

그리고는 아이들 챙기느라 제대로 된 밥 한 끼 먹기 어려울 며느리에게 식지 않은 떡국을 먹이려고, 내가 저녁을 먹는 내내 당신의 식사는 하지 않으시면서 두 아이의 식사를 번갈아 챙기시는 어머님의 마음을,


그렇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그릇의 떡국에 그득그득 담아주신 어머님의 마음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머님에 대한 나의 마음을 가득 담아, 어머님께 내가 만든 떡국 한 그릇 대접해드릴 날을 떠올려 보았다. 멀지 않은 어느 날에 소담하고 예쁜 그릇에 내가 끓인 따뜻한 떡국을 고이 담아 어머님 앞에 꼭 놓아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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