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지 벌써 9년이 되었다. 9년이라니, 내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구나. 지난 9년을 돌아보면 참 엄청난 날들이었다. 무엇 하나 처음 아닌 일들이 없었고, 그러니 매번 서투르고 부족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모자란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 매사에 열정을 다했고, 그럼에도 늘 후회와 아쉬움이 남았다. ‘더 따뜻하게 말할 걸, 더 크게 품어줄 걸, 더 다정하게 안아줄 걸, 더 잘할 걸, 더…더…‘ 누구보다 애쓰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모르지 않았지만, 그걸 인정하기에는 늘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을, 한 달 두 달을, 한 해 두 해를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첫째 아이가 축구팀 코치님, 팀의 친구들과 당일 여행을 다녀왔다. 이른 아침에 출발한 여행은 저녁 시간을 지나서야 끝이 났다. 아이는 나 없이 친구들과 바다에서 모래놀이를 했고, 점심과 저녁을 먹었고, 축구 경기를 보았고,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았다. 그리고 무사히 내 품으로 돌아왔다.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주특기인 나는 아이를 보내놓고도 드문드문 아이에게로 마음이 쏟아졌다. 그래도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엄마 없는 여행이, 그 시간이 온전하길 바랐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오늘 여행에서 있었던 일들을 언제나처럼 미주알고주알 말해주었다. 초성 퀴즈에서 마지막까지 남는 바람에 입수에 당첨되어 차가운 바닷물에 들어간 이야기, 먹고 싶지 않았던 계란초밥을 꾹 참고 먹어낸 이야기, 축구 경기를 보며 마음속으로는 친구들, 코치님과 다른 팀을 응원한 이야기, 친구들이 해준 농담들, 제일 재밌었던 건 공터에서 축구를 한 것이었다는 이야기까지. 내가 보지 못한 하루를, 아이의 목소리로 고스란히 들었다. 아이는 행복해 보였고, 어쩐지 한 뼘쯤 자라서 돌아온 것 같았다.
첫째 아이가 없던 하루동안 둘째 아이는 나를 독차지하는 기쁨을 누렸다. (아이는 내가 존재만으로도 큰 기쁨일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는 유일무이한 사람이다.) 이른 아침부터 엄마랑 데이트하고 싶다고 하길래, 아침도 먹지 않고 둘이서 데이트를 나갔다. 버스를 타고 큰 시장에 가서 수제비도 사 먹고 길거리 간식도 사 먹었다. 아이가 전부터 노래를 부르던 예쁜 구두도 사고 머리핀도 샀다. 서점에 들러 각자가 좋아하는 책도 둘러보고 제일 마음에 드는 책도 샀다. 집에 돌아와 사온 핀과 구두를 정리하고 책도 읽고 유치원 숙제도 했다.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했는지 모른다. 그동안 못한 이야기를 다 하겠다는 마음이었는지, 아이는 잠시도 쉬지 않고 종알종알 떠들었다. 그 목소리가 너무 예뻐서 괜히 울컥했다. 오랜만에 엄마를 온전히 차지한 아이는 평소라면 떼를 부리기도 했을 모든 상황을 편안하게 넘어갔다. 생각해 보면, 그런 상황들은 떼를 부린 게 아니라 자기를 좀 봐달라는 신호를 보냈던 거였다. 오늘은 그런 신호를 보낼 일이 없었으니 종일 저도 편안했을 터였다. 덕분에 나도 종일 편안하고 따뜻했다.
아이들이 자란다. 자라고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에 나의 손길이 필요하던 때를 지나 하나부터 네다섯쯤까지는 혼자도 거뜬히 해내는 때가 왔다. 언젠가는 하나부터 열까지 나의 손길이 하나도 필요치 않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 하루였다. 상상하면 어쩐지 아쉬웠다가 조금 먹먹해지기도 한다. 당연한 일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왜 자꾸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불가능한 일에 마음이 기우는지.
아이를 마냥 돌보기만 하던 날들이 가고, 아이와 친구가 되어가는 날들이 왔다. 각자의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가 없던 시간을 나누는 일, 주말이면 둘이서 손을 잡고 쇼핑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는 일.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과 하던 일들을 이제 내 아이들과 하고 있다. 아이들이 나에게 더없이 좋은 친구처럼 느껴지듯, 아이들에게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더는 나의 돌봄이 필요치 않은 순간이 오더라도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손을 잡고, 쇼핑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는 일들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그 시간이 지금의 나에게 그렇듯, 훗날의 아이들에게도 쉼이고 충전이었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어떤 순간에도 내 편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안전기지가 되어주고 싶다.
남은 생은 이 어마어마한 소망들을 이뤄가는 날들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