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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14. 2020

어떤 상황에서도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이다

네 번째 시간 -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

아우슈비츠, 말 그대로 죽음의 수용소에 수감되어 언제 죽을지, 어떻게 죽을지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낸 저자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긴 책이었다. 이 책은 어떤 상황의 사람들에게도 상대적 행복감을 선사할 만한 책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상대적 행복감을 느끼기보다 내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과 마주하게 되었다.




수용소에서의 체험을 통해 나는 수용소에서도 사람이 자기 행동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120쪽)  


저자는 수용소 생활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 중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자유가 선택의 자유임을 깨달았다. 아우슈비츠라는 죽음의 수용소와 자유라는 단어는 참 어울리지 않지만, 그곳에서도 자유는 존재했다. ‘선택의 자유’는 자유가 말살된 그곳에서도 끝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자유였다. 그것의 발현에 따라 같은 수용소에 수감되었더라도 수감자들의 태도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같은 수감자들을 감시하고 고문하며 한 조각의 빵을 더 얻어먹으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고, 남아있는 환자들을 위해 탈출의 기회를 포기하는 저자와 같은 사람도 있었다. 처한 상황은 모두 같았지만, 그들의 태도가 다른 것은 서로 다른 자유 의지의 발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에 환경의 탓을 많이 한다. 무언가를 하려고 했는데 여건이 안되어서 포기했다든가, 감정을 숨기했는데 상황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든가,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상황이 도와주지 않았다든가……. 그렇게 자신의 선택을 환경 탓으로 미루곤 한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아니, 더 나쁜 환경에서도 더 나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결국 어떤 행동을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 의지인 것이다.


나 역시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결혼생활을 하면서, 또 아이를 키우면서 수많은 상황과 마주해야 했다. 시시각각 주어지는 환경은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많았고 나를 구석으로 내모는 듯한 극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때마다 내가 취하는 행동들은 나의 선택이었다. 상황이, 환경이 좋지 않았다고 그 선택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했던 것은 돌이켜보면 자기 합리화였던 적이 많았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뼈아픈 일이었지만, 이 책은 내게 그간의 나의 선택과 그에 따른 태도를 직면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맞닥뜨릴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자유 의지로 내 태도를 선택할 수 있으며, 그로써 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138쪽)     


삶이 내게 기대하는 것들, 삶이 내게 던지는 질문들, 이 말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쉽게 와 닿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에 만난 친한 언니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언니는 작년 일 년 동안 누군가가 자기 앞에 새로운 문을 계속 놓아준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눈앞에 새로운 문이 있어 열고 나갔더니 또 새로운 문이 있고, 그 문을 열고 나갔더니 또 새로운 문이 있더라며, 한 해 동안 부지런히 앞에 놓인 문을 열어가며 살았던 것 같다고 했다. 그 언니는 작년 한 해 동안 아주 바쁘고 열정적인 해를 살았었다. 그러면서 언니의 자아는 더욱 단단해진 듯 보였고, 이전에 만났을 때와는 달리 자신이 앞으로 무엇이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확신이 있어 보였다.

언니의 말처럼 우리 앞에 새로운 문들이 놓인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아닐까 싶었다. 그 문 앞에서 내가 그 문을 열고 들어갈지, 다른 길을 돌아갈지, 또 다른 문을 찾아갈지, 그 문 앞에서 주저앉을지는 모두 나의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삶이 내게 하필 그때, 그곳에 새로운 문을 놓아주는 것은 분명히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 내 삶도 돌아보면 한순간도 그냥, 그저 흘러온 적은 없었다. 삶의 굽이마다 삶은 나에게 질문을 던지며 여러 갈래의 길을 보여주었고, 그 길에 놓인 문 앞에서 선택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삶이 내게 던지는 그 질문들에 나름대로의 답을 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앞으로도 삶은 내게 끝없이 많은 질문들을 던질 것이다. 그 질문에 답은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다. 그것은 내 삶은 다른 누구의 삶도 아닌, 오로지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내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자유 의지뿐이고, 내 결정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또한 나뿐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던 수용소에서조차 자유 의지를 잃지 않고, 더 나은 선택을 또 올바른 선택을 하고자 했던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내 삶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게 생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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