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밀크 와플과 쌀가루 와플
지금은 나이가 들어 혈압이 정상인에 가깝지만 원래 저는 심한 저혈압이었습니다. 늘 아침 컨디션이 안 좋았고, 오전에 무리를 하면 점심 무렵엔 이미 지쳐서 하루를 망치곤 했었어요. 그래서 아침엔 몸을 덜 쓰려 노력했지만, 아이들 도시락에 스낵까지 챙겨줘야 하는 캐나다에서의 아침 시간은 바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하루 전에 미리 재료를 다 준비해 놓고 아침엔 지지고 볶는 일만 했는데, 문제는 아이들이 아침으로 와플을 요구할 때였습니다. 미리 만든 와플을 토스터에 구우니 맛이 너무도 다르더군요.
하루 전에 만든 와플은 식감이 뻣뻣한 데다 풍미까지 사라져 생크림을 얹어 얕은수를 써 봐도 구제 불가였습니다. 어차피 생크림을 아침에 만든다면 그깟 와플 하나 더 만드는 게 대수냐고 할 분들이 계실는지 모르겠지만, 저혈압 환자에게 아침은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입니다. 거기에다 도시락도 두 아이 것을 싸야 하니까, 다소 노동력이 필요한 아침을 준비한다는 게 버거웠어요. 그래서 보관 가능한 와플 레시피를 나 스스로 만들기로 결심, 와플에 대한 자료부터 살펴봤습니다.
그때 알아낸 사실은 내가 갖고 있던 레시피와 와플 메이커 모두 미국식이라는 것이었어요. 벨지안 와플((belgian waffle)은 미국식보다 사이즈가 더 크고 와플 표면의 요철 모양도 더 크고 깊습니다. 그래서 씹는 식감을 위해 이스트로 반죽을 해요. 이에 비해 미국식 와플은 쉽게 만들고 맛 또한 쉬 변하는 얄팍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벨지안 와플의 맛을 얻음과 동시에 미국식 편함을 포기하기 싫은 사람들은 달걀을 흰자와 노른자로 분리해 와플을 만듭니다. 달걀흰자 거품이 와플의 부드러움과 바삭함을 더해 주거든요. 이 방법을 시도해 보니 결과물이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우유 대신 버터밀크(buttermilk)를 넣어 봤어요. 머핀이나 케이크에 버터밀크를 사용하면 훨씬 더 촉촉하거든요.
여기서 잠깐 버터밀크에 대해 설명하자면, 버터를 만들기 위해 지방을 떠낸 부산물을 말합니다. 단어를 들으면 느끼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사실 지방이 제거된 칼로리가 낮은 우유여요. 게다가 버터 만드는 과정에서 우유가 발효됐기 때문에 건강에 더 좋습니다. 문제는 맛이 시큼한 데다 질감 또한 끈적해서 마시기가 불편하다는 것이지요. 그런 이유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베이킹에만 사용합니다. 버터밀크는 베이킹파우더를 활성화시켜 케이크이나 빵을 더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일반 우유를 사용했을 때 보다 촉촉함을 오래 유지시켜주거든요.
이렇게 버터밀크와 달걀흰자로 촉촉함과 바삭함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와플은 대 성공이었고, 미리 해 놓았다가 토스터에 구워 서빙해도 문제가 없어서 아이들의 아침밥과 방과 후 스낵으로 유용했습니다. 이에 실험 정신이 발동, 밀가루 대신 쌀가루를 넣어 보기도 했는데 이건 완전 와플의 신세계이더군요. 바삭거리는 질감은 밀가루를 사용했을 때의 몇 배이고, 쌀의 구수한 맛과 거친 질감이 오히려 매력적이었어요.
세월이 흐르고 흘러 현재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딸은 집에 올 때마다 아침으로 와플을 해 달라고 합니다. 간식으로 먹어도 될 것을 굳이 아침으로 먹으려는 이유는 브런치 메뉴라는 선입관 때문이겠지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달콤한 와플에 상큼한 과일을 곁들여 먹으면 아무래도 빨리 활력을 찾을 수도 있겠고요. 그래서였을까요? 한 십 년 전 어느 날, 딸아이 친구가 아침에 우리 집에 와서 와플을 먹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방과 후에 와서 먹어도 되는 것을 굳이 아침에 오고 싶다고 하길래, 그 아이를 아침 식사에 초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은 일찍 일어나 신선하게 와플을 구워서 대접했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이는 ‘우리 엄마는 아침에 생크림까지 직접 만들어 얹어 와플을 아침으로 준다’는 제 딸의 자랑질에 살짝 쇼크를 받아, 자기도 그 체험을 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대부분 아침은 셀프로 시리얼을 말아서 먹는 이곳에서 화려한 아침 상을 받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와플을 좋아하는 딸아이에게 최근 글루텐 불내증이 생겼습니다. 쌀로 된 것은 무엇을 먹어도 괜찮으나, 국수나 빵을 먹으면 복부에 팽창감을 느끼면서 피부까지 가려워하네요. 그래서 최근엔 쌀가루로 와플을 만들어 주고 있어요. 오래전 호기심에 개발한 바로 그 쌀가루 와플 말입니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요리는 창조적 활동이며 상황에 따라 진화해야 한다였는데,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이 미리 진화시킨 레시피가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겁니다. 이는 저혈압으로 아침 시간을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아이들에게 만족할 아침을 주고 싶었던, 엄마의 사랑으로 완성한 레시피이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이 사랑을 나누고 싶어 마마 킴의 두 가지 와플 레시피를 공개합니다.
레시피 공개에 앞서, 한국에서 버터밀크 구입이 쉽지 않을 것 같아 만드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우유 250ml에 식초 1 Tbsp을 넣고 휘저은 뒤, 5분에서 10분 정도 뒀다가 사용하시면 됩니다. 쉬워도 너무 쉽죠?
밀가루 200 g
베이킹파우더 3 tsp
베이킹 소다 1 tsp
소금 1/2 tsp
버터밀크 500ml
달걀 4개
버터 110g
술 서너 방울 정도
베이킹용 쌀가루 340g
버터밀크 750ml
그 외 재료는 버터밀크 와플과 같음.
1. 밀가루(또는 쌀가루)와 베이킹파우더, 베이킹 소다, 소금을 섞는다.
2. 달걀을 흰자와 노른자로 분리.
3. 전자레인지에서 버터를 너무 뜨겁지 않게 녹인다.
4. 와플 메이커의 전원을 켜 둔다.
5. 달걀흰자 거품을 낸다. 그릇을 거꾸로 들어도 흰자가 쏟아지지 않을 정도로.
6. 달걀노른자와 버터밀크, 술을 잘 섞은 뒤 버터와 섞어준다.
7. 1과 6을 합쳐서 살살 저어 준다.
8. 달걀흰자 거품 낸 것을 7의 반죽에 세 번 정도로 나누어서 섞는다. 달걀 거품이 꺼지지 않도록 재빨리 섞는다.
9. 와플 메이커에 구워서 과일(딸기, 복숭아, 블루베리 등)과 생크림, 또는 꿀이나 시럽과 함께 서빙한다.
1. 재료에 있는 술은 럼주나 청주 또는 미린을 써도 무방합니다. 달걀을 많이 쓰는 베이킹을 할 때 술을 아주 조금만 넣어주면 비린내가 없어져서 좋아요.
2. 레시피에 있는 쌀가루와 밀가루의 양은 동일합니다. 단지 쌀가루가 더 무겁기 때문에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버터밀크 양이 더 많은 것은 쌀가루는 밀가루보다 수분을 더 많이 흡수하기 때문이어요. 쌀가루로 베이킹을 할 때는 수분을 더 많이 추가해 주세요.
3. 쌀가루 와플은 당장 먹을 것만 빼고는 냉동시켜줘야 합니다. 떡처럼 빨리 굳어버리는 단점이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