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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Sep 28. 2022

어서 와! 노안은 처음이지?

한평생 시력이 좋았다.

얼마 전 건강 검진에서 시력검사를 했는데 여전히 양쪽 눈이 1.2는 나오니 중년의 한 복정말 '좋은' 눈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눈을 가졌기에 그 언제부턴가 책만 펼치면 글자가 조금씩 번져 보이는 것이 실로 당황스러웠다. 제품 상세 표기에 깨알 같은 글자를 읽으려면 나도 모르게 양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멀리 떨어트려 봐야만 했다. 그러고도 정녕 안 보인다면 핸드폰으로 촬영 후 확대하여 읽어보는 최후의 수단까지 동원해야만 했다.

올 것이 온 것이다. 노! 안!

에게는 결코 닥치지 않을 것 같았던 눈의 노화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찾아오고야 말았다.




어릴 때는 왜 그렇게 안경이 써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국민학교 3학년 때였나. 그 시절 신체검사는 모두 교실에서 자체적으로 이루어졌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시력 검사 판의 글자를 가리키시면 아이들은 한 사람씩 줄을 서서 커다란 숟가락(?)으로 한쪽씩 눈을 가리고 맞춰야 했다.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어떻게든 안경을 집어 쓰고 싶은 일념으로 너무도 분명하게 보이는 것들을 '안 보여요'로 일관했던 그날이...

그때 받았던 결과가 여태 살아오면서 가장 나빴던 (거짓) 시력이었는데, 그 조차도 0.7과 0.8이 나왔던 걸로 기억된다. 세상에 그렇게도 안 보인다고 거짓부렁을 남발했건만 그 정도로는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된단다. 어린 마음에 어찌나 실망스러웠던지 모른다.


안경이 얼마나 불편한 것인지를 알게 되는 데는 다소 시일이 걸렸다. 다름 아닌 오빠가 중학교 무렵 안경을 쓰게 되면서부터였는데, 옆에서 보기에도 한쌍의 눈을 추가로 코 위에 얹어 놓는 것이 그다지 편한 것은 아니란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러게 눈이 좋은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는 대략 그때부터 알게 된 듯하다.




가뜩이나 스마트폰을 손에 달고 살고 모든 작업이 PC로 이루어지는 요즘 세상에 우리 눈이 있는 대로 혹사를 당하고 있음은 더 말해 뭘 하겠나. 더 늦기 전 조금이라도 좋을 때 눈을 보호해주잔 취지로 지난해 블루 라이트 차단 보호 안경을 하나 맞췄다. 처음엔 열심히 찾아 썼는데 사람이란 참 간사한 게 그 작은 행위조차도 나중엔 귀찮아서 안 하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게 애초 눈이 잘 보이니 굳이 보호를 위해 안경을 써야 할 필요를 못 느낀 때문이리라. 어쨌든 나의 귀차니즘으로 인해 내 눈은 보호받지 못했고 그 영향으로 노안이 좀 더 서둘러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평소 생활할 때는 안경을 착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줌(zoom)을 통해 나를 만나보신 분들은 모두 안경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보셨으리라.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블루 라이트 차단을 위한 보호 목적도 있지만, 실상 조금 더 솔직하자면 안경은 화장을 하지 않고도 결점(?)을 커버해주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여 화면상에 얼굴이 좀 더 나아 보이기 때문에 쓰고 있음은 이제부터 안 비밀이다.


책을 펼치면 자꾸 글자가 번져 보이니 오랜 시간 읽는 것이 잘 안 됐다. 나는 그저 생활이 분주하니 산만해져서 진중하게 책을 붙들고 있지 못하나 보다 생각했는데, 실상은 눈의 영향이 컸던 모양이다. 쉬이 집중이 잘 안 됐고 조금 읽다가 책을 덮어버리기 일쑤였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주말에 세 식구가 동네 제법 커다란 안경점을 방문했다. 시력을 검사해보니 실제 멀리 보는 시력은 여전히 쌩쌩하단다. 그런데 아주 심하게 진행된 상태는 아니지만 노안이 이제 막 시작된 것 같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다만 한평생을 좋은 눈으로 살아온 내게 있어 이러한 약간의 변화조차도  상당히 크게 느껴졌던 것이다.


월요일에 완성된 안경을 찾아왔다.

다소 낯선 듯 익숙한 안경을 쓰고 책을 펼쳤다. 세상에나!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다. 글자가 아주 선명하게 잘 보이니 머리마저도 맑아지는 느낌은 정말 기분 탓이었을까. 시력이 아주 안 좋은 사람들이 눈에 잘 맞는 안경을 썼을 때 선명하게 잘 보이는 세상을 바라보면 이런 느낌인 걸까? 

아주 약한 노안 주제에 안경 하나 쓰고 별 호들갑을 다 떤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그간 긴가민가 싶은 그 알 수 없고 애매한 번짐을 그저 그러려니 참고 지낸 내가 한심했다.


어쨌든 이제 좀 더 읽을 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들뜬다. 노안老眼은 이렇게 안경 하나로 해결이 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게다가 노안老顔(늙은 얼굴)은 아니니 그 또한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나이에 비해 조금은 젊게들 봐주신다. 정말로....)  

안경 하나를 손에 쥐고, 세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불어넣어 볼 따름이다.

노안! 기왕 찾아왔으니 잘 적응시켜지 않겠나. 세월은 가고 자연스러운 변화인 것을....

패션 소품에서 '생필품'으로 둔갑한 안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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