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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Oct 24. 2022

얘야, 그 방광을 까지 마오

나는 노산의 아이콘이다.

그게 뭐 자랑이라고 그리 떠벌리느냐 할지 모르겠으나, 세상 살아가며 행여 유행에 뒤처질까 봐 한창 결혼과 출산이 늦어진다는 사회적 이슈가 대두되는 때에 발맞춰 만혼滿婚과 노산老産을 감행했다.

물론 누가 유행 따라가려고 일부러 그랬겠나. 그저 눈앞에 닥치는 대로 열심히 산다고 하다 보니 내 인생 스케줄이 그리 흘러갔을 뿐이다. 그나마 그게 트렌드가 되어서 천만 다행히도 옛날처럼 '노처녀'가 시집간단 소리는 안 들었다.


늦은 결혼이 모자라 임신은 로부터 2년의 시간이 더 흐른 뒤에 이루어졌다. 그 어떤 아이가 부모에게 귀하지 않을까마는 늦게 품은 꼬마인지라 더더욱 조심스럽고 소중했던 건 너무도 당연했다.


딸들은 임신의 양상마저도 친정 엄마를 닮는다고들 하더니, 정말 그런 건지 나는 거의 만삭에도 여느 산모들 대비 배가 그리 남산만 하게 커지지는 않았다. 우리 엄마 역시 만삭에 만삭처럼 보이지 않는 배를 안고 있다 보니 엄청난 진통에 병원을 찾았으나 아직 낳을 때가 안됐다며 무턱대고 돌려보냈더란다. 그렇게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하다가 이러다 죽겠구나 싶은 고통에 도저히 안된다며 다시 병원으로 가 결국 그날 늦은 밤 자시子時에 우리 오라버니를 만나셨다고 한다.




흔히들 '기질'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다고 한다. 과연 그 기질이란 도대체 태중에 머무는 중 어 시점에 형성되는 걸까.

나는 우리 꼬마를 보면 아이가 너무도 명확하고 개성이 강한 기질을 뱃속에서부터 한껏 드러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꼬마는 고집이 대단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다. 그런데 행동이 (아빠 닮아) 재바르지 않고 좀 느긋한가 싶은데, 간혹 (엄마 닮아) 급한 성질이 튀어나오는 게 보이기도 한다. (도대체 누굴 닮아) 자기 손 쓰는 건 세상 아끼는 아이인데 (짐작 가는 인물이 집안에 한 명 있다) 이런 일련의 특성을 종합해보면 태어날 무렵의 당시 상황이 납득이 된다.


꼬마는 세상 빛을 보는 순간까지 뒤집지 않았다. 아무리 아이를 뒤집기 위해 세상 불편한 자세의 '체조'를 열심히 해도 이 아이는 당최 거꾸로 뒤집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엄마와 같은 방향으로 앉아 있는 게 그 속에서도 편했던 모양이다. 지 아빠가 머리(로 추정되는 부분)를 콕콕 누르며 뒤집으라 그리 말을 해줘도 끝까지 꿋꿋이 앉아있을 건 뭐람. 대단한 고집이다. 그렇다 보니 선택지는 한 가지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이를 제왕 절개로 낳았다.


이 아이는 애초 자력으로 세상에 나올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아기를 낳는 엄마도 온몸의 뼈가 열리는 고통을 겪어야 하지만, 산도를 밀고 나오는 아기 역시도 세상 빛을 보기까지의 과정이 절대 녹록지 않다고 한다. 자신의 온 힘을 다해 밀고 밀어 나와야 하는데 그 과정이 조그만 아기들에겐 상당히 힘든 일이라고 한다.

인생은 참 시작부터 그렇게 고난의 연속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집 꼬마는 그 힘듦을 어찌 미리 알았는지, 그저 편안히 앉아 있다가 의사 선생님 손에 의 꺼내어짐을 당했다. 나올 때도 그러더니 지금도 뭔가 스스로, 그리고 힘들게 해야 하는 일들은 어떻게든 안 하려고 잔꾀가 대단하다. 사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조금 힘들어도 견뎌보는 경험, 그것을 뛰어넘어보는 경험을 하며 단단해지길 바라는 건데, 도무지 애써보려 하지 않는 아이와 늘 실랑이가 끊이지 않는다. 언제나 너무 쉽게 '도움'을 찾는 아이에게 스스로 헤쳐가는 법을 깨닫게 해 주기 위해 매일 내가 고생이다.(셀프 토닥토닥)




아이가 뒤집지 않아 정말 난감했던 것 한 가지는 바로 이거였다. 아이의 발이 아래쪽을 향하고 있다 보니 건강한 우리 따님이 무차별적으로 발길질을 시작하면 그곳에 여지없이 나의 '방광'이 늘 얻어맞고 있었다. 그게 무슨 샌드백인 줄 알았던 건지. 아이를 품고 비슷한 경험을 해보신 분들은 '맞아 맞아'를 외치시겠지만, 실로 뱃속에 생명체를 넣어볼 일이 없으신 분들은 절대 그 느낌을 알 길이 없을 것이다. 인간의 언어로는 뭐라 표현할 길이 없는 요상 야릇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비뇨기적 이상으로 찾아오는 잔뇨감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그저 '지속적으로' 요의尿意를 느끼게 하는데, 실제로 그게 마려운 건 또 아니다. 그렇다고 변기와 한 몸이 되어 하루 종일 화장실에 있을 수는 없잖은가. 살면서 경험해본 중 가장 이. 상. 한. 느낌이었다.


"어우 얘야... 네가 이담에 축구선수가 된다 해도 하나 놀랍지 않을 만큼 건강한 다리 소유자인 건 너무 감사한데 말이다아~ 이건 좀....

야아~ 방광은 까지 마아~~~!"


그렇게 대답 없는 아이에게 수없이 방광 까지마를 외치며 계속 까이고 또 까였다.




아이는 워낙에 잠이 없어서 태어난 날부터 거의 여섯 살 무렵까지 엄마에게 통잠을 허락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잠자는 게 너무 좋은 나는 늘 수면 부족으로 만성 피로에 찌들어 살아야만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아이는 뱃속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하루는 자다가 누군가 나를 흔들어대는 느낌이 나서 잠이 깼는데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하도 신기해 한동안 바라보다 다시 잠을 청했던 기억이 난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각 뱃속 아이가 어찌나 힘차게 발길질을 하며 놀고 있는지, 누워있는 내 배가 좌우로 엄청나게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역시도 어디 가서 쉽사리 볼 길이 없는 진귀한 광경이긴 했다. 그 밤에 그 요란스러운 발길질은 대체 뭐람...

그러더니 세상에 태어나서도 그렇게 오랜 세월 거의 매일 밤 엄마를 잠에서 깨게 만드신 위인이시다.


위인들은 알에서 태어나거나 뭔가 독특한 스토리들을 가지고 있던데, 우리 아이가 위인이 되려고 그리도 유난을 떨었나. 그 튼튼한 다리로 지금껏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어 너무 감사하지만,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저 질색하게 된다.


친정 엄마가 안 계셔서 임신 중에 서러움도 참 많이 느꼈었다. 유독 엄마해주셨던 음식이 그리웠던 어느 날, 혼자 만들어보겠다고 부엌에서 칼질하는데 열심히 방광에 대고 발길질 해대던 건강한 딸내미 덕분에 질질 울음식 만들던 기억이 떠오른다.


방광을 까이면 온갖 설움이 배가 된다.

(이상한 논리지만 임신 중엔 그렇다)

그게 그렇게 서러웠던 기억에 헛웃음 난다. 아이가 세상에 나온 뒤로는 방광이 아니라 온몸에 킥을 당했는데, 잠잘 때 갑자기 날아오는 발길은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이의 튼튼한 두 다리를 보면 감사의 마음과 동시에 살짝 겁이 난다.(웃음) 

그래도 너무 사랑스러운 내 새끼인걸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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