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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Sep 08. 2021

송편 한입 깨물면 떠오르는 옛 추억

이제 정말 가을이구나 싶다.

곧 있으면 추석이 다가오는데, 사실 연중 명절이 몇 차례 있어도 추석만큼 풍성하고 들뜨는 명절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다.

하우스 재배 기술이 발달하여 과일이나 채소가 등장하는 계절의 경계가 사실상 사라진 요즘이다 보니 수확의 계절 가을을 마주하는 마음가짐이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의 설렘에는 감히 견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지만, 그래도 무더위와 한바탕 싸움을 끝낸 후 마치 개선장군이 된 것 마냥 파랗고 높은 하늘을 마주 보며 살랑대는 바람을 얼굴에 느끼는 이 계절은 그저 반가움이 가득이다.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가 인생 최대 고민이었던 그 언젠가 어린 시절에는, 엄마가 방앗간에서 커다란 대야에 하얗게 빻은 쌀가루를 끌어안고 집에 오시는 모습이 바로 추석 명절의 시작을 알리는 사인이었다.  


요즘에야 끌고 다니는 수레도 다양하고 그야말로 캐리어가 일상에 들어와 활용되고 있으니, 누가 무거운 것을 머리에 이고 다닌다 하면 그저 이상한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예전엔 머리에 무언가를 이고 지고 팔러 다니던 분들도 많았었고, 우리네 어머니들도 간혹 머리에 무언가를 이고 다니시는 모습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추석을 앞두고 한창 분주한 방앗간 앞에서는 더더구나 많이 보이는 광경이었다.


우리 엄마가 머리에 물건을 이고 다니시던 모습을 뵌 적은 없는 것 같은, 그래서인지 그 커다란 대야를 안고 저 멀리서 걸어오시는 모습이 그렇게나 힘겨워 보였던 것 같다.


뽀얗고 하얀 쌀가루를 방앗간에서 곱게 빻아 오시면, 따뜻한 물로 익반죽하고 힘들여 뭉치고 치대 송편을 만들 떡 반죽을 마련해 주셨다. 그리고는 거실에 작은 반상을 하나 펴놓고 모두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 것이다. 송편 안에 들어갈 소는 2~3가지 정도로 보통은 검은콩, 밤, 콩가루였던 것 같다.


나는 콩가루가 들어간 송편을 지금까지도 제일 좋아하는데, 그 시절에도 서툴고 작은 손으로 열심히 송편을 빚으며 콩가루만 반복적으로 넣었던 기억이 난다. 하나라도 더 내 입에 맛있는 게 많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다. 그럼 어김없이 '골고루 넣어야지'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한 번씩 등장하곤 했다.


그렇게 속을 알 길이 없는 송편을 한입 깨물어 원치 않는 소가 등장했을 때의 실망감이란 어린 나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속상함이었다. 그 싫은 맛을 끝까지 참고 먹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송편을 통해서도 인생의 한 조각을 알게 모르게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송편을 빚을 때면 여지없이 등장하는 말이 있으니 '예쁘게 송편을 빚어야 이다음에 예쁜 딸을 낳는다'는 말이다. 그 말이 도대체 뭐라고 좌우지간에 나는 예쁜 딸을 낳아야 한다며 송편을 빚는데 집중에 집중을 더하던 기억이 난다.

떡을 잘 만들게 하기 위한 일종의 동기부여 차원이었을 텐데, 그 내용이 참말로 예스럽다.

어찌 됐든 내 눈엔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귀한 우리 딸을 얻었으니, 어릴 적 내가 송편을 꽤나 잘 빚었던 덕분이리라.


요즘은 어린아이들에게 '오감 발달'이라는 명목 하에 이러한 떡 만들기가 소위 통과의례 마냥 마음먹고 하는 '체험 활동'이 되었는데, 내 어릴 적엔 매해 추석이면 편을 만들어 내는 일이 당연한 과제였으니 이보다 더 좋은 촉감놀이가 어디 있었겠나.

그 시절에는 그게 도움이 되는 건 줄을 모르고 실생활에서 해봤던 것들이 참 많았는데, 요즘 세상엔 그 일련의 것들을 하나하나 누군가 분석하고 정리해 아이들의 발달 과정이란 타이틀로 조목조목 넣어 두었으니,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조금은 성가셔졌다고 해야 하나.

나는 그저 우리 삶 속에 자연스러웠던 그것들이 사실상 사라져 가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아쉬움만이 가득할 따름이다.




일 년이 어찌나 빨리 지나는지 벌써 지난해 일이 되었다. 추석을 앞두고 소위 딸아이에게 떡을 만드는 경험을 만들어주고 싶어 '송편 키트'라는 것을 구매했다. 쌀가루와 소가 각각 봉지에 포장되어 왔는데, 실제 익반죽을 해보니 적절한 농도를 유지하며 잘 치대어 쫄깃한 떡이 되기 위한 최적의 반죽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엄마가 열심히 치대는 모습을 보고는 호기롭게 직접 해보겠다며 덤볐던 딸아이도 생각보다 힘이 들자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게 그 일을 고스란히 양보했다. 이렇게 조금 반죽하는 일도 엄청난 노동인데, 그 시절 우리 엄마는 한가득이었던 그 많은 쌀가루를 어찌 다 혼자 반죽해내셨을까 싶은 생각에 짠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에서야 내 생각에 안쓰럽다 싶을 뿐 실제 그 시절 우리 어머니들은 의례히 해야 할 일로 받아들이셨을 테니, 이렇게 편리한 세상을 살아가는 내 일상 속에서도 이다음에 우리 딸이 나를 돌이켜 생각해보며 우리 엄마는 그걸 어떻게 해내셨을까 하는 일이 과연 생길 수 있을는지,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조차 어렵다.

딸아이가 꼬깃꼬깃 만든 송편




얼마 전 온라인 마트에서 장을 본다며 들어가 보니 냉동 송편을 판매 중이다. 솔직히 요즘은 송편뿐만 아니라 각종 전까지도 이렇게 간편식으로 대량 생산되어 판매되다 보니 사실 어렵게 지지고 볶고의 과정을 굳이 거쳐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되었다.

부득부득 어려운 길을 택하자 하는 것은 단지 그래도 우리의 전통이고,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함께 음식을 만들며 나누는 미운 정 고운 정이 있기 때문일진대, 가족들 몇 명이 모일 수 있을지조차도 보건당국의 처분대로 결정해야만 하는 코로나 시국에 음식을 장만하는 일련의 절차들이 다소 번거롭게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나는 아마 올해도 여지없이 대형마트에 명절 대비 장을 보러 가게 될 테고, 아마도 여지없이 떡 코너 앞을 떠나지 못해 한참을 서성이며 마치 미술 작품 감상하듯 하나하나 살펴보고 더없이 신중하게 떡을 골라 담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떡을 참 좋아하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랑 마주 앉아 조물조물 송편을 빚던 경험도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지만, 이렇게 다채로운 떡을 아무 때나 골라 사 먹을 수 있는 지금의 세상도 내게는 더없이 소중한 축복이라 여겨진다.


물론 다소 아쉬움이 마음속 한편에 자리하고 있지만, 모두가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느라 힘들이기보다는, 각자 전문가가 만들어내는 최상의 결과물을 나는 그저 감사히 즐기는 것이 현대 사회를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모습 아니겠나. 그래도 이다음에 우리 딸이 엄마랑 쪄먹은 냉동 떡보다는 함께 반죽해본 온정 가득한 떡을 추억 삼아 살아갈 테니, 왠지 올해도 난 사서 고생을 선택할 것이란 예감이 들긴 한다.


뚜껑을 열면 뜨거운 김 잔뜩 올라오는 한솥 가득 송편을 쪄주시던 우리 엄마의 뒷모습이 아련히 참 그립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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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을 담아가고 있습니다.

9월의 주제는 우리의 명절, 추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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