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드신가요?
나는 가끔 집안에 있을 때 고립감을 느끼곤 한다. 그럴 땐 라디오를 켜면 무겁던 공기의 중량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바깥세상 이야기와 사람들을 집안에 불러들이는 마법 같은 라디오는 그 발명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다. 1894년 이탈리아 청년 마르코니는 혼자서 연구한 끝에 무선통신 기술을 발명했다. 그는 이 기술이 군사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장관에게 편지를 쓰지만 정신병자로 취급받고 무시당한다. 그 이후 기술을 좀 더 개발시켜 대서양 횡단 통신에 성공하게 된다. 선박 선장들이 이를 통해 교신을 주고받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마르코니는 타이타닉호의 침몰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사건 현장 근처 선박들에게 소식을 전달해 서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게 된다. 마르코니가 없었다면 생생하게 재연된 타이타닉 영화는 아마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집안에서 따뜻하게 울리는 라디오 소리도 들을 수 있었을까.
해거름 녘이면 습관처럼 라디오를 켠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낮은 보이스, 젊음의 방종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과 성숙미가 차올랐다. 배철수, 그는 30년 동안 지각 한 번 없이 지층처럼 한 자리를 지켜온 DJ이다.
“오늘도 배철수의 음악캠프....시작합니다!!!”
늦은 오후 좋아하는 라디오 방송이 시작된다. 퇴장을 알리는 음악처럼 일상으로 퇴근이 시작된다. 가스 불 위에 뚝배기를 올리던 누군가의 눈망울에 빛이 차오르고, 올림픽 대교 속 자동차 행렬에 끼인 운전자는 반짝이는 한강에 눈길을 던진다. 차가워진 바람에 팔짱을 끼고 걸어가던 이의 이어폰 속에도, 힘겹게 고갯길을 오르던 작은 마을버스 안에서도 수고한 이들에게 라디오는 달콤한 친구가 되어준다. 익숙한 팝송을 들으며 추억을 꺼내어보는 시간들도 점차 소중해진다.
“오늘은 안타깝게도 우리의 팝스타가 타계한 날입니다.”
“시신을 태운 운구차가 지나가는 동안 곳곳의 팬들이 그의 히트곡을 일제히 틀어놓기 시작했다죠?”
“네, 맞습니다. 그의 음악은 돌림노래처럼 광장에 울려 퍼졌다고 합니다.”
“떠나야 하는 사람에게도 떠나보내야만 하는 팬들에게도 잔잔한 위로가 되었겠네요.”
음악이 사랑받는 한 영원히 살 것 같았던 팝스타도 죽음 앞에서는 평범했다. 이른 죽음과 늦은 죽음의 차이만 존재할 뿐 모두 다 평등하게 떠난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술 모아 소리 내면 날숨 속의 공기마저도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엄마의 다리 밑을 비집고 나와 아등바등 살다가 되돌아갈 곳은 지층 속에 누운 동물화석 옆자리라니 기가막힌 결말이 아닌가.
라디오를 타고 온 유명 팝가수의 타계소식에 내 마지막 날을 그려보았다. 장례식 장을 찾아와준 조문객들을 위해 살아생전 부탁해 둔 음악 하나를 튼다면 나는 무얼 고를까. 일단 꽃은 사절이다. 아름다운 꽃이 막 졌다고,,,금방 다른 꽃으로 대신하진 말아주길. (실은 꽃들에게 미안해서이다.) 눈물을 짜내기 위한 향을 피우는 것도 자제해주었으면 좋겠다. 대신 트로피컬 음료수처럼 달큰한 아로마 향초를 곳곳에 피운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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