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이 번거롭다면 브로콜리를 무쳐봐

명치가 쓰리고 소화가 잘 안 되시나요?

by 지각쟁이

독서를 하며 묘한 호기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요리기 먹어보고 싶어지거나 음악을 찾아서 듣고 싶어진다. 주인공이 한 입 베어물자 입안에서 팍 터지던 조개튀김은 무슨 맛일까. 북한에서 갑작스레 귀한 명령을 받은 스파이가 자동차 안에서 듣던 부에노비스타소셜클럽은 어떤 음악일까. 쿠바는 아르헨티나 출신 체게바라가 이상적인 사회주의를 향해 혁명인 일으켰던 근원지이다. 귀환 명령을 받은 북한군 스파이가 듣고 있던 건 바로 쿠바의 음악이었다. ‘역시 작가들은 소설 속에 작은 소품 하나도 그냥 등장시키지 않는구나...’ 디테일을 알고보니 경탄할 지경이다.


50년 전 쿠바에는 유명한 회원제 클럽인 부에노비스타소셜클럽이 성행했다. 그곳에서 한 시절을 주름 잡았던 뮤지션들은 클럽이 문을 닫게 되자 거리로 쏟아졌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미국의 유명한 기타리스트는 원년 멤버들을 수소문하며 밴드를 복구하기 시작했다. 어느 연주자는 화려한 금관 악기를 잡던 손으로 구두를 닦으며 근근히 생활해왔다. 또 어떤 이는 오랜 무관심 속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1966년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멤버들과 단 6일간의 즉흥녹음으로 완성하게 된 이 앨범은 그 후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게 된다.


녹슬고 무뎌진 연주실력을 가다듬은 그들이 마침내 무대에 오른다. 그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보는 순간 심장이 나풀거렸다. ‘연주자님들 떨지 말고 잘 해내 주세요!’ 은근하게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이었다. 인생의 종착역에 도착한 듯 보이는 노인들이 악기를 들고 연주를 시작했다. 피아노 건반 위에서 주름살 가득한 마른 손가락이 나이를 잊은 채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였다. 연주를 하는 게 아니라 춤을 추고 있는 듯 보였다. 마치 어릴적부터 이 순간을 위해 단 하나의 칼날을 갈아온 듯 눈빛이 날카롭다. 생이 제멋대로 흘러가는 동안에도 그들은 음악을 뜨겁게 사랑했다. 그걸 지켜보는 쿠바인들에게도 음악은 애국심과 맞먹는 열정이었다. “누군가는 죽음의 끝자락에 서있는 노인이라 말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며 생을 좀 더 즐기다 가고 싶다”그들은 말한다.


지금 주방 곳곳에서 부에노비스타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음악에 엮인 사연을 알고 들으니 또 다른 매혹으로 다가왔다. 카네기 홀에 오르던 연주자들의 식지 않는 열정이 주방을 뜨겁게 달구었다.


‘평범했던 오늘 하루, 식지 않는 열정으로 나를 위한 밥상을 차려야지!’


시장에서 브로콜리 하나를 천 오백원에 집어왔다. 매대 위에 쌓여있는 브로콜리는 항공사진으로 내려다 본 맹그로브 숲처럼 푸릇푸릇했다. 성장을 마친 녀석의 몸값을 너무 헐값에 사들고 온 것 같아 미안했다. 식탁 제일 가장자리에 주인공으로 올려야겠다. 오늘 점심은 브로콜리로 조물조물 나물을 무쳐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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