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울 엄마

몸이 항상 무겁고 피곤하신가요?

by 지각쟁이

마음이 찌뿌둥한 날에는 샤워를 한다. 뜨거울 물줄기가 등허리를 타고 내리면 굳었던 몸과 마음이 말랑해지는 걸 느낀다. 샤워실 안은 곧 습기가 가득해진다.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들이 주르륵 미끄러져 내린다. 캠핑에 불멍이 있다면 샤워실에는 물멍이 있다. 달려가는 삶의 시간을 느리게 만들어주는 마법이다. 복잡한 마음이 차오른 날엔 그 무게를 이기지못하고 스르륵 하강하는 날이 있다. 내 안에 남의 말들로 가득 찼을 때,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이 무력함으로 남아 털어내어지지 않는 날 말이다. 그런 날이면 젖은 빨래를 짤수기에 꾹꾹 짜내듯이 나의 감정에도 탈수가 필요하다.


일단 아무 생각하지 않고 밖으로 나간다. 운동화 끈을 조여매고 모자를 눌러쓴 채 무조건 걸어본다. 햇빛의 온기는 등을 따스하게 쓰다듬고 선선한 바람은 코끝에 불어와 숨을 쉬게 만든다. 땅의 기운을 밟으며 걷다보면 사소한 것들에 감동을 받는다. 아무렇게나 흐드러지게 핀 풀꽃, 지렁이와 나비들을 보며 별 거 아닌 하루는 특별한 날이 된다.


저기 앞에 세 명의 여자가 걸어간다. 주말을 지나고 만나 더 반가운 기색이다. 그들 사이에는 넘쳐나는 수다가 끊이질 않는다. 나란히 선 중년 여성 셋이 자매처럼 닮아있다. 외모도 분위기도 꼭 닮아 ‘우리 엄마’를 떠올리게 한다. 그녀들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중단발 머리에 네모난 가방을 가로질러 맸다. 신속히 여닫기 쉬운 지퍼형식에 무겁지 않은 중저가 브랜드의 숄더백이다. 가방은 모두 검정색이다. 검정은 경제적이다. 때가 타지 않아 오래 쓸 수 있고 어떤 옷에도 둘러 멜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엄마는 다른 예쁜 색상들을 자식들을 위해 양보했을 지도 모른다. 검정은 ‘무던함’과 ‘미뤄두는 마음’이다. 서로 각자 다른 신발을 신었다. 서로의 취향이 갈린다. 아이보리색 샌들을 신거나 운동화 혹은 가죽 로퍼를 신었다. 문득 그녀들을 바라보다 나의 엄마가 떠올랐다. 내가 어릴 적 바라보며 자라던 엄마의 라운드 등과 닮아있었다.


어릴 적 울 엄마는 늘 반팔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었다. 티셔츠는 단정히 바지 속에 넣고 검정색 가죽벨트를 맸다. 바닥이 푹신한 운동화를 신고 단촐한 숄더백을 매면 신이나 발바닥으로 트위스트를 추던 밝은 나의 엄마. 내 기억 속에 엄마는 늘 짧고 뽀글뽀글한 파마머리였다. 파마가 풀릴 즈음이면 미장원에 가면 이삼만원에 자신감을 말고오던 엄마였다. 엄마는 가끔 보자기를 뒤집어 쓴 채로 동네를 활보하기도 했다. 엄마에게는 일 분 일초가 아쉬웠다. 아침드라마에 나오는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엄마의 품은 세상에서 가장 푸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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