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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Dec 13. 2020

바람을 가르며

십 년 전쯤에 나는 자전거를 타다가 왼쪽 위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고, 또다시 몇 년 뒤에 내리막에서 고꾸라지면서 왼쪽 갈비뼈와 팔꿈치가 금이 가는 사고를 당했다. 그 이후로 트라우마가 생겨서 자전거를 한쪽 구석에 방치해 두고 지내왔다.

첫 번째 사고는 도로에서 갑자기 우회전을 하며 끼어든 자동차에 놀란 내가 급브레이크를 잡아서 뒷바퀴부터 공중에 떠버린 자전거가 전복되면서 일어났다. 무거운 짐이 실린 배낭을 메고 거꾸로 떨어지면서 가장 먼저 지면에 닿은 내 왼손이 모든 하중을 고스란히 전해받아 왼쪽 위팔이 '뚝' 소리와 함께 부러졌다. 묵직한 둔기로 맞은듯한 느낌의 팔을 부여잡고 정신이 없어 멍한 채로 앉아 있는 나에게, 얼굴이 사색이 되어 차에서 내린 앳된 얼굴의 자동차 운전자가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사과를 해서 경황이 없는 와중에 나는 상대의 연락처도 받지 않고 보내버렸다.

두 번째 사고 때는 야간에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내려오던 중에, 도로의 중앙선을 넘어서 갑자기 내 앞으로 방향을 틀어 돌진하는 오토바이의 헤드라이트에 놀라 눈앞이 하애 진채로 고꾸라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오토바이 배달원은 무심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이며 넘어져 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옆구리부터 다리까지 온몸이 욱신거리고, 왼쪽 팔을 뻗어보니 기분 나쁜 통증이 느껴졌다. 일단 내일 일어나서 병원에 가봐야겠으니 연락처를 달라는 내 말에, 배달원은 부딪힌 것도 아니고 내가 혼자 넘어졌으니 자신은 잘못이 없다며 정색을 하곤 어딘가 전화를 했고, 순식간에 배달원과 같은 또래로 보이는 고등학생 2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선가 나타나 주저앉아 있는 나를 에워쌋다.

“아저씨, 지금 돈 받아내려고 그래요?”

삐딱한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말하는 배달원의 말에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나는 쌍욕을 퍼부었다.

“xxx야! 지금 이게 괜찮아 보여!! 뭐? 돈 받아 내려고 이러냐고?  네가 도로를 가로질러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어? 내가 먼저 안 넘어지고 부딪혔으면 어쩔 뻔했어!!!’’

사과는커녕 적반하장 격인 배달원이 너무 괘씸해서 한대 후려갈겨주고 싶었지만, 욱신거리는 몸으로는 공중 3회전 540도 발차기가 불가능할 것 같아서 신고를 했다. 경찰이 오고, 배달원의 가게 주인까지 오고 나서야 상대의 명백한 과실이 인정되어 보상을 받고 치료를 할 수 있었다.

사고나 부상 자체가 살면서 별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긴 하다만, 첫 번째 사고 때, 사고의 경위를 들은 병원 의사로부터 상대의 연락처를 받지 않고 보낸 내 경솔함에 대해 질책을 받았던 것이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첫 번째 경우도 내가 너무 빠른 속도로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면, 자전거 뒷바퀴가 먼저 떠올라 공중에서 회전해버릴 정도의 사고가 나지 않았을 테고, 두 번째 경우도 내리막에서 천천히 내려오면서 주위를 잘 살폈다면 사고를 미리 예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묻지 마 식 폭행이나 폭언이 아니라면 살아가면서 우리가 겪게 되는 갈등과 다툼의 원인이 완전히 일방적인 경우는 드물다. 교통사고에서조차 상대의 명백한 잘못처럼 보여도, 결정되는 과실비율은 자신에게도 일정 책임이 있는 것으로 판결이 나는 경우가 허다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물론 그 과실비율이라는 것이 보험사의 영악한 계산에 의해 조율되는 것이겠지만.


오래 알고 지내온 사이일수록 서로를 배려하지 못하고 상대를 탓하기만 할 때 갈등이 더 커진다.

쌓여있던 원망이나 실망, 섭섭함과 오해, 뾰족한 말들에 의한 상처들이 버무려져서 서로를 탓하게 되고 좋았던 사이가 틀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누구나 서로가 서로에게 실수와 잘못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서로가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상대의 탓만 할 때 진정한 갈등의 원인이 된다.


오래 세워두었던 자전거를 수리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신천을 달렸다.

찬 공기가 몸을 에워싸고, 가쁜 숨을 내뱉으면 온몸으로 전해져 오는 상쾌함의 열기를 기억하고 있는 내 몸의 열망이, 새롭게 시작한 일과, 변화된 일상과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던 지난 몇 개월 동안 쌓인 스트레스에 더해져 다시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페달을 밟으며 내가 나에게 말을 걸면, 묵혀두었던 질문들이 어느 순간 쏟아져 나오고, 풀리지 않던 의문들은 이내 산뜻한 날개를 달고 가볍게 훨훨 날아간다.


느리게 지나가는 강들과, 나무들 사이사이로 비치는 햇살에서 경건함을 느낀다.

자연 속에 있으면서 내가 온전히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의 벅찬 감정에 감사함을 느낀다.

내 두 다리로 페달을 밟고, 내 두 다리로 땅을 힘차게 디디는 일의 경이로움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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