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호른이나 나팔을 부는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된다면 멋질 거 같다는 생각이요. 웅장하고 또 질서 정연한 단원들 사이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지휘자의 손짓과 눈을 바라보면서 단원들과 함께 호흡을 한다는 것은 무척 짜릿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대한 음악들을 원도 없이 생생하게 연주하고 듣고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갑자기 안타까운 마음이 밀려오네요. 왜 나는 좀 더 어릴 때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그때는 왜 클래식을 접하지 못했을까요.
아, 아니죠. 세상에 얼마나 많은 어린아이가 클래식 음악을 쉽게 접하고, 좋아하게 되고, 마침내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가 되기를 희망할 수 있을까요. 굉장히 성숙한 영혼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어린 나이에 스스로 그런 결정을 내리는 일은 매우 드물 거예요.
그러면 왜 나는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쉽게 접하는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을까요. 왜 우리 집에는 오디오 세트도 없었고, 그 흔한 뽕짝 음반 몇 장도 없었을까요. 왜 그때는 라디오에선 가요나 팝송만 주야장천 흘러나왔을까요. 왜 그마저도 별로 흥미 있게 듣지 않았던 것일까요.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수준 높은 부모의 영향이 있어야만 그런 것들이 가능한 것일까요. 환경이 그래서 중요한 것일까요.
아! 잠시 좀 억울하다는 생각에 투정을 부렸네요.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나니 정신이 다시 맑아졌습니다.
사실은 아침에 눈떠서 우연히 듣게 된 클래식이 너무 좋아서 그런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어요. 마탄의 사수라는 곡인데요. 처음 도입부에 호른의 장중한 음이 깔리면서 시작되거든요. 덕분에 기분 좋게 아침을 시작할 수 있었죠.
근데 투정은 그냥 괜한 투정일 뿐이고요, 제 속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무엇보다 이렇게 좋은 음악을 듣고 감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에요. 그런 아름다운 음악들에도 심드렁하다면 내 삶이 얼마나 무미건조하겠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감수성이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을 해본다면, 물론 타고난 천성도 있겠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환경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잖아요. 어린 시절 클래식 음악도, 오디오 세트도 없었지만, 골목에 나가면 친구들이 있었고, 뛰어놀 수 있는 공터가 있었던 덕분에 마음껏 활개를 치며 놀았어요.
그렇게 어울리며 놀던 시간이 내 안에서 무한한 감성을 키워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놀이 안에 클래식도 있었고, 트로트도 있었고, 팝송도 있었어요.
음악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잖아요. 우리에겐 추억이 있어 그 음악들이 깊은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라고 봐요. 눈을 감고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 음과 음 사이에 지나간 추억들이 그려지지 않나요. 거기에는 분명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골목과 친구들의 모습도 있을 테고요. 그 모습에 음표를 붙이면 음악이 되는 거예요.
클래식이 없었어도 내 유년시절은 참 행복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
어땠나요, 당신들의 유년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