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여있는 물건들의 종류를 다 헤아리기도 벅찬 골동품 가게의 한 모퉁이에 왕따처럼 덩그러니 놓인 두 점의 유화는, 오래전 많은 미대생들이 입었던 일명 ‘깔깔이’를 입은 여학생과, 군복 바지를 입은 -복학생으로 보이는- 다부진 몸의 남학생이 어정쩡한 듯, 호기로운 듯 포즈를 잡고 있는 그림이었다.
요즈음의 대학 실기실 풍경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90년대에는 회화과 학생이라면 필수 관문처럼 그렸을 인물 입상이나 좌상 등 비슷비슷한 색감과 구도의 아카데믹한 그림들이 실기실마다 놓여 있었다.
골동품 가게에서 우연히 발견한 두 점의 유화는 채 여물지 못한 실력으로 어설프게 그린 그림이었지만, 나름 정성을 들인 흔적이 보였고 무엇보다 그 시절이 떠올라 반가웠다.
사실 당시에도 나는 꽤 못마땅했는데, 군복이나 깔깔이가 언제부터 대학 안에까지 침범해서 미대생들의 전유물이 되었는지 불명확하지만, 패션이라면, 삼시세끼 라면을 먹더라도 포기하지 못하는 일부 여학생들까지도 꾀죄죄하고 땀 내 가득 배어있을 것 같은 깔깔이를 입고 온 교정을 깔깔거리며 돌아다닐 수 있었는지 여전히 의아하다.
기껏해야 이십 대 중반을 전후하는 복학생들이 이미 세상을 다 아는 듯한 표정과 행색으로, 형형색색 반짝여야 할 캠퍼스를 칙칙한 회색으로 물들였겠지만, 대학의 선후배 관계도, 나아가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간관계도 군대에서의 방식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 전염 같은 패션 테러가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닌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그땐, 실기실에서 온갖 똥폼을 잡고 끊임없이 담배를 피워대도 누구 하나 탓하지 않았고, 때때로 술판을 벌여서 서로 궤변을 늘어놓다가 난장판이 되는 일도 허다했으니, 깔깔이는 그 모든 꼰대 같은 모습의 좋은 방패막이되었던 모양이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은 추억이고, 추억은 낭만에 기대지 않고는 쉽게 성립될 수 없다.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고스란히 배인, 옛 선배들이 입었던 교복도 지금 보면 꽤 멋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효율적인 통제와 관리의 수단으로 일률적으로 학생들에게 입혔던 교복이, 옷이 귀했던 시절 부모들에겐 걱정거리를 드는 일이었고, 빛바랜 사진 속에서는 추억으로 남겨져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때 만약 미대생들의 입학 기념으로 노란 깔깔이를 일괄적으로 보급해 줬다면, 꽤 멋스러운 인생 사진 한 장쯤 우리는 가질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