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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Aug 29. 2018

여름이 가기 전에

지난겨울에 낡은 주택과 상가 건물이 허물어지고 난 뒤 방치된 공터에는 조금씩 잡초들이 자라는가 싶더니, 깊어가는 여름과 함께 숲을 이룰 만큼 식물들은 성큼 자랐고, 이내 그 공터를 가득 메웠다.

지난 밤늦은 귀갓길에선 여름 내내 지겹도록 들었던 매미의 울음소리에 섞여, 숲이 되어버린 공터 가득, 맑고 또렷한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시절 여름 방학이면 시골에 있는 작은집에 며칠씩 머물렀던 기억이 있다.

등이 빨갛게 익어 피부 껍질이 다 벗겨지도록 강에서 수영을 했고, 텃세를 부리는 이웃마을 아이들에 맞서 사촌동생과 힘을 합쳐 입에 붙지도 않은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주인도 없는 강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때로 급작스럽게 소나기가 내리면 검어진 하늘을 바라보며 강에 누워 흠뻑 비를 맞았고, 기분 좋은 촉감의 빗줄기는 내 몸과 강 위에서 꽃처럼 피었다 지곤 했다.

빗소리가 그치고 나면 매미의 울음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고, 잠자리는 내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어깨 위에 앉기도 했다.

큼지막한 자두의 아삭한 맛은 기막혔고, 시골의 여름밤은 호젓했다.


새까맣게 탄 얼굴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동네 친구들도 약속이나 한 듯이 까매진 얼굴로 모두들 모여 각자의 즐거웠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고, 허물 벗겨진 서로의 등과 목덜미를 훈장처럼 보여주며 웃었다.

그때도 매미는 하염없이 울어댔다.

때때로 그 매미를 잡아 작은 사각 박스 안에 넣고 흔들어 대곤 했는데, 지상에서의 매미의 삶이 그토록 짧고, 그 지독한 울음은 암컷을 향한 절절한 구애라고 누군가 이야기해줬더라면 그렇게 경쟁처럼 채집하지는 않았을까.

어리석음과 잔인함은 무지에서 오는 것이고, 아이들의 잔인함은 때로 나약한 곤충들에게로 향해, 철없던 우리들은 멀쩡한 잠자리의 날개를 뜯고 왕개미의 머리와 몸통을 이유 없이 분리하기도 했다.

유일하게 컬러 TV와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던 친구의 집에 초대받은 날은 이소룡과 성룡의 액션을 넋을 놓고 봤고,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는 언젠가 우리도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자고 약속하기도 했다.

도시의 밤이 깊어지면 잠옷 바람으로 아파트 옥상에 모여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했고,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들을 보며 북두칠성을 찾기도 했으며, 보물섬과 어깨동무를 번갈아 돌려보며 키득거렸고, 시골에서 보았던 쏟아지는 듯한 별들을 이야기하며 그 별들 사이에서 언젠가는 정말로 E.T가 자전거를 타고 우리들을 만나러 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올여름 내내 가볍게라도 스쳐 지나가 주길 바랐던 태풍은 불청객처럼 뒤늦게야 찾아왔지만, 다행히 우려했던 만큼 큰 생채기를 남기지는 않고 지나갔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찬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숲을 이루었던 공터의 싱그런 식물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바스러질 것이고, 그보다 먼저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도 자취를 감출 것이다.

작은 사각 박스 안에 갇힌 매미의 처절한 울음과, 날개 잃은 몸뚱이로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몸부림쳤을 잠자리와, 우리들의 발아래서 바둥거렸던 개미를 불현듯 생각한다.

숲을 이룬 도심의 작은 공터에는 아직은 끝나지 않은 이 뜨거운 여름의 태양 아래, 저마다의 생을 불태우고 있을 작은 생명들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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