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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Mar 31. 2020

어떤 변화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나의 경우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흔히 말하는 올빼미 체질로만 여기며 살아왔는데, 요즘 들어 이른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게 되면서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 일찍 일어나는 일은, 자정을 훌쩍 넘겨 새벽까지 서성이던 시간들에 비하면 더 또렷한 정신으로 하루를 좀 더 생산적이고 여유 있게 보낼 수 있게 해 준다.

해가 뜨기 전 조용한 가운데 앉아서 글을 쓰거나 독서를 하고 나면 그 포만감은 종일 이어진다.


책장 한쪽 구석에 방치해놓았던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 보았다.

그 방대한 분량을 그토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곰브리치에게 새삼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보내고 싶다.

미술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다만 미술가만 있을 뿐이다라는 시대를 관통하는 곰브리치의 말은 시간을 초월하여 현대에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

미술의 역사가 철학의 역사이고, 철학의 역사가 곧 세계사이듯이 우리의 삶은 어떤 한 단편으로 쉽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서양의 중세시대의 어두운 편린들이 집단 이데올로기에 감염된 맹목적인 지금의 종교집단에 고스란히 투영된 듯한 모습은 철학의 부재일까, 되풀이되는 역사의 한 단면일까.

사람이 우선일 수 없는 세상,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바라보는 일들이 소통의 부재와 단절을 가져온다.


틈틈이, 규칙적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난 후, 막연히 알고만 있던 단어들을 생각날 때마다 찾아보고 공부하는 일이 습관처럼 되었다.

워낙에 세상이 좋아져서 일일이 사전을 뒤적이지 않아도 자판에 입력만 하면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있어 그것의 의미를 찾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이제껏 막연히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그로 인해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실들에 대한 의구심과 동시에, 나는 과연 무엇을 알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습관처럼 사용해 온 언어에 대한 무지함, 그 언어를 선택하고, 그 언어에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하고, 그 행동이 낳게 되는 오해의 결과까지 생각하니 참담한 심정이었다.


모든 것은 막연함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막연하게 일을 하고, 막연하게 놀이를 하고, 막연하게 그림을 그리고, 막연하게 글을 쓰고, 막연하게 사랑을 하고.

그보다 먼저 우리는 막연하게 태어났을 것이다.


함부로 사랑을 이야기했던 나의 무지와, 상대의 진심을 알아주지 못했던 나의 오만과, 진실되지 못한 이에게도 진심을 보여준 나의 어리석음을 생각했다.


예술가에게는 은둔이나 고립이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그로 인해 더 충만되고 성장할 수 있다면 기꺼이 끌어안아야 할 시간들이지만, 하루라도 빨리 이 징글징글한 마스크를 벗어던질 수 있는 시간이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하여 더 깊고 넓어진 눈과 가슴으로 당신과 내가, 우리 모두가 활짝 웃으며 악수할 수 있기를.


작업실 담벼락 넘어 하얀 목련은 소리도 없이 피었다가 금세 시들 모양이다.

나는 그 오묘한 섭리는 알지 못한 채, 애틋함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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