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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an 13. 2018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타고난 호기심 때문인지, 무모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혈기왕성하던 이십 대 때 나는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해서 괜한 오해를 사기도 했는데, 지금은 잠깐 곁눈질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잔상이 뚜렷이 남게 되고, 때로는 관상까지 읽히는 경우도 있어 당황하기도 한다.

그래도 마법의 펜이라도 내 손에 쥐어져 그것을 손에 드는 순간 투명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면, 터키탕에 소복이 모여있는 여인들을 구경하러 가기 전에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과, 노고가 담긴 눈동자를 좀 더 가까이에서 오래, 깊게 바라보고 원 없이 그릴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연탄난로의 온기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작업실의 추위를 피해 미루어두었던 볼일들을 처리하려고 나선 길에서, 종이박스로 둘러싸인 칸막이 안에서 코를 골며 잠에 빠져 있는 채소 파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먹먹한 가슴을 뒤로하고 반월당 지하로 내려가니 불금의 떠들썩함과 해방감을 즐기려는 젊은이들 사이에 이끼처럼 끼여져, 겨우내 한 몸처럼 이리저리 끌고 다닐 짐가방을 자신의 옆에 차곡히 쌓아두고 지친 몸을 기댄 노숙인의 모습도 보였다. 저마다 약속이나 한 듯 자신의 폰을 들여다보고 재잘거릴 뿐인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시간이, 그래도, 또다시 영하의 추위 못지않게 뼈저리게 파고드는 적막감과, 배고픔과, 외로움에 몸서리치다가 깊은 잠을 잘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인 새벽에 비하면, 그 노숙인에겐 지금이 조금은 더 나은 시간일까.

가난이 그들 스스로의 잘못만은 아닐 것인데, 주위의 온정과 관심은 늘 제한적이고 부족하기만 하다.

자신과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이들만 위하는 숱한 위정자들과, 거기에 빌붙어 아첨하는 기생충 같은 인간들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써대는, 일반 서민들은 평생을 억척같이 살아도 구경도 못할 돈의 티끌 같은 일부만으로도 곳곳에 방치된 채 내버려진 힘없고, 소외된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면, 서민들이 피땀 흘려 낸 세금을 어떻게든 그들을 위하는 일에 쓰일까 진정성 있는 고민 없이 함부로, 생색내듯이 쓰이는 곳곳의 낭비들 또한 얼마나 기가 찬 일인가라는 생각 또한 더불어 하게 된다.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봄을 생각하는 일은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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