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 Jan 10. 2017

오래된 목소리

언젠가부터 동성로 곳곳에는 버스킹 하는 이들이 오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대게가 뮤지션을 꿈꾸는 듯한 젊은이들이었는데 그들이 부르는 노래도 한창 공중파의 여러 프로그램에서 유행하는 최신곡으로 채워졌고, 간혹 자작곡으로 여겨지는 것들도 있었다. 청량한 음성과 수준 높은 연주 실력을 갖춘 그룹들은 주위에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고, 열려진 기타 케이스에는 지폐들이 제법 쌓여있기도 했다.

스케치를 하거나 재료를 구입하려 그곳의 같은 장소를 종종 지나치는데, 어느 날부터 벙거지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아주 오랜 시간을 같이 한 듯 낡아빠진 기타를 조용조용 연주하는 남루한 행색의 노인이 문 닫은 가게의 유리벽에 몸을 기대고 노래를 읊조리고 있었다.

오래전 유행했었던 노래들을 내리 서너 곡씩 부르고, 큰 생수통의 물 한 모금으로 입을 적시고 또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모든 노래를 그만의 읊조리는 목소리와 세월이 만들었을 깊이로 불러서 익숙한 노래조차 새로운 곡처럼 착각이 들기도 했고 사람을 묘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시종일관 무표정하고 악보도 하나 없이 연달아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물을 마시고, 또 노래를 하고, 기타를 내려놓고, 담배를 태우며 휴식을 하고, 다시 노래를 하고.


그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화려한 기교는 일절 없이 노래가 바뀔 때 간혹 기타의 카포를 옮겨가며 엄지손가락만으로 약하게 기타 줄을 튕겼는데 정통적인 연주법에는 벗어나 보였고, 오랜 시간 자신만의 주법을 연주해 온 그만의 방법인 듯했다.


무심코 그 앞을 지나치는 사람들 속에 십 대로 보이는 한 무리의 소년들 중 한 명이 노랫소리보다 갑절은 큰 목소리로 일행에게 말했다.

"야! 너도 요즘 기타 배운다며? 나중에 할 일 없으면 저런 거나 해!"

소년들의 눈에는 그 노인의 노래와 연주는 할 일 없는 이들이 소일하는 그저 그런 것이었고, 또래들끼리의 재미난 농담 이상의 것이 아닌 듯 보였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숨 가쁜 아이돌 스타 중 누구라도 그 자리를 대신했다면 반짝거리는 보석 같은 눈을 하고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려고 기를 썼을 그들일 텐데.


오래된 기타, 오래된 목소리는 그것만이 가질 수 있는 색깔로 낡은 엠프를 통해서 조근조근 흘러나왔고 나는 민망한 기타 케이스에 민망한 지폐를 한 장 남겨두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해, 새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