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행도 이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군.
처음 여행을 시작한 곳으로 가서 그 여행을 마무리한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라오스에서는 비엔티안을 거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물론 루앙프라방에서 태국이나 중국 등 국경을 마주한 나라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건 장기여행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일 것이다. 또한 한국에서 출발하는 라오스행 비행기는 모두 비엔티안 왓타이 공항으로 들어온다. 그러니 라오스 여행의 시작은 비엔티안일수 밖에 없다.
아쉬움과 설렘이 번갈아가며 내 마음을 수놓는 사이 기차는 비엔티안역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대로 기차역의 모습은 방비엥과 루앙프라방의 기차역과 흡사했지만, 사람들은 그보다 몇 배는 많아 보였다. 역시 외국인도 많았지만, 가방을 메고 양손 가득 짐을 든 현지인들도 꽤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에 휩쓸려 기차역을 빠져나오니 깜깜한 어둠 속에 대기하고 있는 밴과 툭툭이들의 불빛이 밤바다 위를 표류하는 어선들처럼 반짝였다. 손에 종이뭉치를 든 남자들이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목적지를 묻고 사람들을 분류해서 안내를 하면, 다시 툭툭이 기사들의 안내에 따라 사람들은 툭툭이에 올라탔다. 툭툭이 기사들은 능숙한 솜씨로 손님들에게 건네받은 캐리어와 각종 짐들을 툭툭이의 지붕 위로 차곡차곡 실었다. 사람들도 기사의 안내에 따라 안쪽부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나는 제일 안쪽에 밀착해서 자리를 잡았다. 내 맞은편에는 중년의 서양인 커플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프랑스말로 무엇인가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기사가 손님들에게 다시 목적지를 묻고 체크하고 난 뒤 툭툭이가 출발했다.
밤이 내려앉은 비엔티안은 기온이 떨어져 달리는 내내 시원한 바람이 얼굴에 그대로 느껴졌다. 우리의 도시와 비교하면 이곳은 시골에 가까웠지만, 루앙프라방에 며칠 있다가 오니 거리에 불빛들만 봐도 대도시에 입성하는 기분이었다.
큰 쇼핑몰을 지날 때 프랑스인 커플이 구글지도를 보며 두리번거리자, 그들의 옆에 있던, 나와 잠깐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태국 남자가 지리에 익숙한 듯 웃으며 영어로 위치를 알려주었다. 프랑스인 남자는 sorry?라고 말하며 알아듣지 못했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다시 태국인이 설명을 하자, 프랑스인 남자는 그가 말한 영어를 다시 또렷이 발음하며 오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순한 얼굴의 태국인은 민망한 듯 나를 보며 웃었다. 알아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발음을 문제 삼아 알아듣지 못하는 척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처음부터 거만한 표정으로 툭툭이안 사람들을 눈을 내리깔며 보는 프랑스인 커플의 모습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툭툭이가 덜컹거려 옆에 있던 태국인이 살짝만 부딪혀도 프랑스인 남자는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며 자신의 옷을 매만졌다.
그들이 여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때 자신의 조국이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한 마음에 방문해 보는 것일까. 굳게 닫힌, 편견이 가득한 마음으로 여행을 하는 그들의 마음이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새 사람들은 하나둘 목적지에 내리고, 프랑스인 커플과 나만 남게 되었다. 나는 툭툭이 난간에 기대어 바람을 맞으며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했다. 멀리서 빠뚜사이가 환한 조명아래 빛나고 있었다. 마침내 프랑스인 커플이 내리고, 조금 더 달려 툭툭이는 내가 예약한 호텔 앞에 도착했다. 툭툭이 기사는 친절이 캐리어를 내려주고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는 듯 숨을 한번 크게 내쉬며 환하게 웃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최대한 빨리 샤워를 한 뒤 인드라이브로 택시를 호출해서 windwest로 갔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어서인지 아직 빈자리가 드문드문 보였다. 무대 위에서는 밴드의 연주에 맞추어 모자를 쓰고 귀걸이를 한 남자가수가 열창하고 있었다.
나는 무대 앞 오른쪽에 자리를 잡고 닭날개와, 모닝글로리와, 비어라오를 주문했다. 비어라오가 나오자마자 한잔 가득히 잔에 채워 단숨에 마시니 목안에 짜릿한 쾌감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저녁 내내 아무것도 먹지를 않았구나. 음악을 감상하며 천천히 맥주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 순간 자리는 꽉 차서 군데군데 서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수가 교체되어 여가수 두 명이 듀엣으로 아바의 노래를 불렀다. 어느새 시간은 밤 12시가 넘어서고 있었고, 펍 안의 사람들은 무대 앞에 하나둘 나와서 음악에 맞추어 한 무리가 되어 춤을 추었다. 다시 가수가 교체되어 머리가 벗어진 중년의 남자 가수가 나와서 슬리퍼를 신고, 동네 마실 나온듯한 복장으로 Ben E. King의 stand by me를 불렀다. 재즈풍으로 변형시킨 노래는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잘 어울려 굉장히 매력적으로 들렸다.
어디에나 고수는 존재하기 마련이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만큼 아름다워 보이는 것도 없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진정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삶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둥근원을 그리며 춤을 추던 사람들 사이에서 푸른색 원피스를 입은, 까만 피부의 여자가 나에게 손을 내밀며 웃었다. 나는 여자가 내민 손을 얼른 잡고 춤을 추는 무리에 섞여 들었다.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사람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차놀이를 하듯 무대 앞을 빙글빙글 돌았다.
둥글게 둥글게
둥글게 둥글게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춥시다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