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막이 일어나서 호텔 조식을 간단히 먹고 야외수영장으로 가보니 아담한 크기에 물도 맑고 사람도 없어 혼자 수영하기에 그만이었다. 역시 돈이 좋군. 여행을 마치기 전에 괜찮은 숙소에서 머물고 싶은 마음에 선택한 호텔은 값어치를 했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 모텔의 평균 숙박료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유유자적, 배를 까뒤집고 누워 느리게 발을 저으니 기분 좋은 물의 감촉이 전신에 전해져 왔다. 높고 파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눈을 감으니 깜깜한 어둠 속에서 아지랑이 같은 것들이 제 마음대로 모양을 만들어내며 일렁거렸다. 내 얼굴과 몸을 간지럽히는 햇볕의 느낌과, 반쯤 잠긴 몸에서 느껴지는 물의 감촉이 이루어내는 상반된 조화가 주는 기분은 나를 어떤 미지의 세계로 데려가는 듯했다.
수영장에서 나와 썬배드에 누워서 몸을 말리고 있으니 세명의 젊은 중국인 남자들이 큰 목소리로 떠들며 다가왔다. 이마에서부터 뒤로 넘긴 머리는 기름을 발라서인지, 혹은 감지 않아서인지 햇볕에 번들거렸고, 팔과 다리에는 문신이 어지럽게 새겨져있었다. 세 명 다 똑같은 콘셉트로 다니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일까. 혹시 내가 모르는 뮤직 비디오 촬영이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그중에 한 명이 내 옆의 썬배드에 다리를 쩍 벌리고 드러누워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는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내 등뒤로 걸걸한 웃음소리와 함께 첨벙하고 수영장 물이 크게 튀어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라오스에는 서양인 관광객만큼 중국인과 한국인 관광객의 수도 꽤 많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떠들거나, 간혹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십중팔구 그들은 중국인이거나 한국인이다. 물론 중국인일 경우가 더 많지만 한국인들의 진상도 그에 못지않다.
나는 이곳에 와서 여행하는 동안 라오스 인이 싸우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비엔티안의 낮시간은 특별히 할 일이 없다.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뜨겁기도 하고, 여행자거리를 벗어나면 관광인프라가 별로 없어 관광객들은 낮시간에 커피와 맥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거나, 마사지를 받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를 한번 돌아보고 싶은 마음에 터미널에 가보았지만, 제멋대로인 배차시간과 1시간 30분쯤 후에나 버스가 출발한다는 말을 듣고 포기했다. 버스가 아니더라도 이곳에서 툭툭이를 타고 뜨거운 거리를 달리면, 불편하고 덥지만 그 자체가 주는 낭만이 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인드라이브와 콕콕 무브 등 더 편리한 교통수단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툭툭이 기사들은 툭툭이를 길가에 주차해 놓고 낮잠을 자거나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일이 많아졌다.
툭툭이를 타고 오후 3시가 훨씬 넘어 여행자 거리로 들어서니 골목에 위치한 마사지 가게 앞 작은 마당에서 앳된 여자 세 명이 맨발로 둥근 탁자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내가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밥을 먹다 말고 그중 한 명이 따라 들어왔다.
가게 안에는 서너 명의 손님들이 의자에 누워 눈을 감은채 발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카운터에 앉아있는 여자가 보여주는 메뉴판에서 발마사지를 선택하고 안내해 주는 의자에 앉으니, 조금 전 나를 따라 들어온 여자가 물이 담긴 작은 대야를 들고 왔다. 솜털이 아직 가시지 않은 여자는 보철로 교정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여자는 정성스레 내 발을 씻겨주고 수건으로 닦은 다음 마사지를 시작했다. 작은 손으로 내 발을 꾹꾹 누르며 여자는 옆에서 다른 손님을 마사지하는, 똑같이 앳되어 보이는 여자와 조곤조곤 대화를 하며 까르르 웃었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두 사람이 동시에 또 까르르 웃었다.
“오퐈, 핸썸”
내 발에 오일을 바르며 나를 올려다 보고 보철로 교정된 이를 드러내며 여자가 또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옆에서 마사지받던 백발의 백인 남자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곤 어깨를 어쓱하며 미소 지었다. 두 마사지사는 서로 웃으며 수시로 대화를 주고받느라 마사지는 건성이었다. 옆의 백인 남자의 마사지가 끝나고, 백인 남자를 마사지하던 여자가 내 등뒤로 와서 어깨를 마사지하며 내 얼굴을 이쪽저쪽 번갈아 보고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오퐈, 핸썸”
두 여자는 내 발과 내 어깨를 동시에 주무르며 까르르 웃었다. 중년의 나이에도 어린 여자들에게 오빠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나라. 여기가 바로 라오스이다.
계산을 하고 나오니 가게 앞마당에는 또 다른 마사지사 두 명이 테이블에 앉아, 비닐에 든 찹쌀밥과 이름 모를 양념이 든 비닐, 그리고 개구리로 보이는 음식이 든 비닐을 펼쳐놓고 손으로 찹쌀밥을 조물거려 동그랗게 만들고 있었다. 나를 마사지했던 여자가 나와서 다가오길래, 나도 음식을 맛보고 싶다는 시늉을 하며 입으로 손을 가져가니 찹쌀밥을 조물거려 양념을 얹어 나에게 주었다. 스티키 라이스라고 부르는 이곳의 찹쌀밥은 쫀뜩쫀득하니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씹는 맛이 좋다. 내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찹쌀밥에 개구리 반찬을 조금 뜯어 얹어주길래 손을 내저으니 여자들은 동시에 까르르 웃었다.
"몇 살이에요?"
번역기를 보여주며 나를 마사지해 주었던 여자에게 내가 물었다.
"18살"
여자는 또 까르르 웃으며 대답하고 개구리 반찬을, 우리가 닭튀김을 먹듯이 뼈까지 발라가며 맛나게 먹었다.
비엔티안에는 마사지 가게가 넘쳐난다.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이곳에서 많은 여자들이 마사지 가게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부모에게 돈을 보내준다고 한다. 그들의 대부분은 10대 후반에서 20대의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