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er me
나는 무신론자다.
생각해보면 학창시절
여름방학 때는
반강제적으로 여름성격학교에 보내졌고
크리스마스 땐 캐럴을 부르러 교회에 갔지만
한편으론 초파일에 절에 갔으며
집에서는 꼬박꼬박 제사를 지냈다.
교회는 그 시절 자녀들을 유해환경에서
보호할 수 있는 나름의 문화체험이었고
적당히 시간을 떼울 수 있었으므로
종교의 의미로 보내진 건 아니었다.
미션스쿨에 입학했지만
신앙심은 없었고
꾸준히 무신론자이다.
그래서 난 아빠의 죽음이 더 서럽고 슬프다.
어느 종교에서는 우리아빠는 지옥에 간다고 했고
어느 종교에서는 동물로 태어난다고 했다.
종교를 믿든 믿지않든
내가 다시 아빠를 볼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내가 지금까지 마음속에서 떨쳐내지 못하는
한 가지 생각은
‘만약 아빠가 죽기전까지
쓸쓸했으면 어쩌지?’
이 물음이다.
가난한 농부의 막내로 태어났고
특유의 성질로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지 못했고
몸집은 작아서 툭하면 무시당했다.
시험치기 싫어서 가지않은 고등학교가
그의 전 인생을 힘들게 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인생의 성취는
자녀였다.
자신과 다르게 명문대를 졸업했고
남들보다 뛰어난 외모와 성질로
주변의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자녀도 그의 삶을 지속시킬 원동력이
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할때마다
말 그대로 내 심장을 꺼내서
누군가 칼로 저미는 감각을 받는다.
그의 마지막 그 순간까지
세상에 태어나 자신이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고
세상에 태어나 자신의 편은 한명도 없다고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고
생각했으면 어쩌지?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나는 이게 싫다.
내가 천국이 있다고 믿으면 천국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 해줄텐데
다음 생이 있는 종교라면 거기서
내가 그의 부모로 태어나
나를 사랑해준 것을 그에게도 똑같이
해줄텐데
무신론자인 나에게
죽음은 곧 ‘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서럽다.
더 이상 내가 얼마나 아빠를 사랑했는지
얼마나 감사한지
목소리
휴대폰에 남겨진 부재중 메시지
매일같이 쓰던 낙서같은 일기
나를 기다리던 창 밖의 모습
한 귀로 음악을 듣던 모습
나에게 요리를 해주던 뒷모습을
얼마나 보고싶은지 전달할 수 없기에
제발 꿈에서라도 나타나주길 바라며
가끔 잠에 드는 것도 전달 할 수가 없기에
나는 서럽고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