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기
냄비는 시나브로 괴성을 지르기 시작합니다. 그와 다르게 무심히 재료를 준비합니다. 냄비의 아우성은 사뿐히 무시합니다. 냉장고를 뒤져 봅니다. 마늘, 파, 떡국용 떡, 만두, 김치, 운 좋게도 만난 깡깡 얼어있는 전복까지. 떡라면, 만두라면, 전복라면, 김치라면, 마늘라면, 파라면, 재료 이름을 제목으로 다 붙여 봅니다. 흥분됩니다. 그러다 귀찮은 마음에 모두 넣으면 무슨 라면일까 생각합니다. 갑자기 아득해집니다. 진정합니다. 결국, 몇몇은 냉장고에 돌려놓습니다.
먼저, 마늘을 넣었습니다. 알싸한 향이 수증기와 같이 올라옵니다. 괜찮습니다. 라면 수프를 넣습니다. 투명하던 물이 어느새 붉어집니다. 마그마 같은 색은 아니지만 매울 것 같이 보입니다. 건더기 수프를 넣습니다. 끓어오름이 더 격렬해집니다. 마지막으로 면을 넣습니다. 사실 마늘을 넣고, 면을 넣어도 별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파를 추가합니다. 김치를 넣으려다 관둡니다. 대신 고춧가루를 조금 넣었습니다. 정신없이 끓어오릅니다. 불을 조금 낮췄습니다. 이제 점점 막바지로 달려갑니다. 생각해 보니 겨우 마늘, 파, 고춧가루만 넣었습니다. 뭐였을까요. 아까의 흥분은요.
면을 들어 살짝 흔들어 봅니다. 탱탱한 느낌이 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흔들었을 때, 면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매의 눈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감으로 해야 합니다. 후자로 합니다. 현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간 실패했던 손으로 전해지는 느낌이 완성이 다가옴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왠지 양이 적을 것 같습니다. 고민합니다. ‘지금 넣으면 면이 불어날 것인데….’ 생각합니다. 또 다른 선택 앞에 섰습니다. 조금 탱탱한 면을 먹을 것인지 불어 터지더라도 포만감을 느낄 것인지 말입니다.
역시 역시 라면 1개는 실수입니다. 일요일 헝그리 하게 달려온 점심인데 말입니다. 뻘건 국물이 속이 타는지 부글부글합니다.
'망설이는 시간은 면을 불릴 뿐이야!!!!'
외침이 들려옵니다.
주말의 점심-라면 par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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