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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는 일은 꼭 생기게 마련이다

사랑은 불안 속에서 자라거나 무너진다

by 리뷰몽땅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두려워할수록

더 집착하게 되고 결국 스스로 그 사랑을 망친다.라고.


민정이 좋아하는 알랭 드 보통도 말했다.

불안은 사랑의 그림자다.

사랑하는 순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시작한다.라고.


민정의 마음이 딱 그랬다. 한 번도 민수가 자신을 떠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헤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민정이 먼저 이별을 고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말로는 민수에게 헤어질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이별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터였다. 민수에게서 장점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일은 묘하게 돌아갔다. 비싸 보이는 양복을 차려입은 민수의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서면서

민정은 심하게 가슴이 두근댔다. 이렇게 민수를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 나 같은 여자한테 민수 정도면 감지덕지였구나."


일부러라도 신세 한탄하는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돌아가셨어어도 주저앉아 우는 것만은 하지 않았다.

독한 년이라는 말을 들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는데.

그날 이후로 민정은 한숨이 늘어났다. 민수에게 자신이 짐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그게 아니다. 민정은 자존심이 상했다.


어쩌면 내가 민수를 잡고 늘어질 수도 있겠다.

나를 버리지 말라고.


민정은 그게 두려웠다. 자신이 그럴까봐 무서웠다.


한편 민수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지금껏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할머니의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문제는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나타나면서

할머니의 마음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아버지는

민수가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할머니에게 말했다.


"나를 보고도 그래요? 남자든 여자든 짝을 잘 만나야지. 최소한

나와 비슷한 사람은 만나줘야 골로 가는 일은 없다고요"


할머니에게 민수는 귀여운 손자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소중한 아들이었다.

몇 년 만에 나타나 아들 노릇이라도 하려는 자식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고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민정을 친손녀처럼 예뻐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180도 바뀌어버린 게 문제였다. 아버지와 손발이 착착 맞았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고아는 고아라고 했다. 어디 기댈 데도 없는

그런 여자를 데리고 살면 남자만 고생이라고 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을 민수도 아니었지만 입을 열면 열수록 민정이 욕만 먹었다

가시방석 같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 버렸지만

마음 한구석은 허전했다.


민정의 집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어느새 봄바람이 훈훈했다

커튼이 굳게 닫혀있는 창문을 발로 톡톡 두들겨 보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민정이 창문 앞으로 다가오는 실루엣을 보았다

갑자기 가슴이 쿵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민수는 마치 자지러지듯 뒷걸음치며 옆 골목으로 숨어버렸다

행여나 창문이 열릴까 목을 길게 빼고 지켜보았지만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민정은 선배의 전화를 받고 또 하나의 알바를 더 추가했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쉴 시간이 없을 정도로 민정의 일은 늘어났다

가끔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기는 했지만 이내 그것마저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바쁜 날들이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에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멈춰 서서 꼼짝도 않고 서 있는 날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졸음이 밀려왔고 하는 수 없이 축 처진 걸음으로 집에 들어가

씻는 둥 마는 둥 잠자리에 드는 날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기다렸고 이내 기다림은 무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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