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 당신(3)

사랑은 숨길 수 없다

by 리뷰몽땅

숨길 수 없는 게 사랑입니다


지금도 그 날의 기억이 떠나질 않습니다.

한 번도 목소리 높여 말하지 않던 당신이었기에

더 그러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성적으로 목소리가 크지 못한 나는

목소리가 큰 사람들 앞에서는 기가 죽곤 했지요


하여 목소리가 큰 사람들은 무식한 사람들이라

치부해버렸습니다. 그게 편했어요


얼마나 사람이 보잘 것 없으면

큰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을 제압하려 드느냐는..


그 또한 상처가 준 교훈 아닌 자기만의 깨달음.

뭐 그런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날도 나는 무엇엔가 화가 나 있었고

당신은 그런 나를 달래고 있었지요.

이런 말을 해도 저런 말을 해도

나의 토라짐은 풀릴 줄을 몰랐구요.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그때의 나는 분명히 마흔 몇 살의 아줌마가 아니라

스물 몇 살 어린 아가씨에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그런 내 모습에 지쳐 버렸구요.

아마 나라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고 싶은

사랑이라는 이 마음 탓이었다고 말해버리면

너무 비겁하고 치사한 것일까요.


어둠이 깔린 까페 창가에 앉아

당신은 별안간 소리를 버럭 질렀구요

그렇지 않아도 우리를 흘낏흘낏 보던 몇몇 젊은 사람들이

급기야 우리를 빤히 볼 만큼.


나는 당신이 소리를 질렀다는 것에 화가 났다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상한 눈초리가 너무나도 마음에 걸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빠져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답니다.


중년의 남녀가 마주 앉아 있으면

다들 그렇게 의심쩍은 눈초리로 보는지

당사자인 나는 너무 화가 나고 부끄러웠지만

내가 그들의 입장이라 해도 그럴 거라는 것쯤은 아주 잘 알고

나 역시 그만한 나이에는 그랬었답니다


평소 술을 잘 마시지 못하던 아니,

마셔서는 안되던 당신은

꼭 술을 마시면 전화를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잘도 풀어냈지요


참 이상하게도 당신이 내 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전화가 걸려오면 나는 옷 매무새를 만지고

대충 뒹굴며 누워있던 잠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에는 전화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동여 매느라 바빴답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는 말들을 하나라도 놓칠까봐

전화기를 귀에서 한순간도 떼놓지 못했지요

그렇게 때로는 한 시간도 두 시간도 넘게 우리는 이야기를 했구요

또 그렇게 잠이 든 다음날 아침은 세상이 온통 금빛으로 빛나 보였답니다


어린 연인들이 아닌 우리는

왜 지나온 시간들을 똑같이 반복해야 했을까요

그리고 그 사랑의 감정은 그 때 뿐이라는 절박함을

왜 매일 느껴야 했을까요


잡고 있어도 놓아 버려도 너무 두려운 감정들을

우리는 왜 늘 안고 살았을까요


당신도 나도 그 때 우리가 걸어야 했던 길에서

엇나가고 있음을 알면서도

부여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까요


나이 들어 느끼는 사랑은

설레임이나 기다림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나듯

그런 편안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그런 편안함을 가지기 위해서

수많은 설레임과 기다림 그리고 아픔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하여 젊은 시절 찾아오는 사랑보다 그 나이에 느끼는 사랑은

훨씬 더 힘들고 아프고 두려움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살아가면서 사랑에 대해 섣부르게 판단하고 결정짓는 것은

정말 바보같은 짓이지요


시장엘 들렀다 오는 길에 우연히 당신의 딸을 보았습니다

아주 어린 꼬맹이적 모습과 옅은 화장으로 멋내던 모습을 기억하는 내게

당신의 딸은 아직도 여전히 어린 처녀 아이에 불과한데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이젠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장보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더군요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까 두려워

남모르게 훔쳐보았습니다


핏줄이라는 것은 그래서 무서운 건가 봅니다.

당신을 참 많이도 닮은 딸을 보며

지나간 추억들이 다시 한 번 파도치듯이 밀려 왔습니다.


당신과 꼭 해보고 싶었던 일 중에 하나를

아직 못해봤다는 생각이 들자

괜한 아쉬움과 괜한 미련이 다시금 가슴을 파고 듭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단 한번도 말해보지 않았던 그 한마디도

늘 가슴에 걸립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 못했을까요

서로에게서 들으려고 안달조차 하지 않았을까요

그 말이 서로를 옭아맬까 두려웠을까요


그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것도 아니었을텐데


해질녘 거리를 걸어야 겠습니다

오랜만에 당신과 함께 걸었던 길을 고스란히 그대로 걸어야 겠습니다


어느 길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고

어느 길에서 어떻게 웃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여도


길을 걷고 있으면

그때 우리가 나누었던 느낌들은 그대로 살아난답니다


당신도 그런 추억을 느낄 수 있나요


당신..참 많이 사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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