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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뷰몽땅 Nov 09. 2024

공부방 쌤으로 살아간다는 것

있잖아요 쌤

대학을 다닐 때 가장 쉽게 할 수 있었던 아르바이트가 과외였습니다.

처음부터 과외를 한 건 아니었어요.

카페 알바도 해보고 교통지도 알바도 해보고 식당 알바도 했는데 

가장 팔자 좋고 단가도 높은 것이 과외 알바였습니다.

물론 시험 기간이 되면 머리가 아프죠. 

내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심지어 다시 공부를 시작하나면 좀 더 좋은 대학을 다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1. 첫날 첫 수업


첫날 첫 수업이 아직 기억이 납니다. 소개를 받아서 간 곳에는 천방지축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형제가 앉아 있었어요. 첫날부터 수업하다 말고 주먹질을 하고 싸우는데 그냥 도망 나오려다가 돈 생각이 나서 주저앉아 아이들을 뜯어말리고 결국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마무리를 했습니다.


행여나 제가 포기하고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할까 봐 장난쟁이 형제의 어머니가 어딘가에 깊이 숨겨 두었던 커피세트 하나를 선물로 받기도 했어요.


겨우 초등학생 공부를 가르치는데 무슨 준비 작업이 필요할까 해서 무작정 덤벼 들었던 나는 다음 수업을 위해서 준비라는 걸 하기 시작했죠. 그 두 장난꾼들을 어떻게 하면 한 시간 반동안 얌전하게 만들 수 있을까. 3일 동안 머리가 터져라 고민했습니다.


성공했을까요? 하하 



2. 취업을 포기하다


그렇게 대학 4년을 내내 과외를 하며 살았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고 또 알바로 벌어들인 돈이 있으니 돈은 제법 모았습니다. 돈 맛을 보고 나니 쉽게 과외를 포기할 수는 없었죠. 


제가 졸업할 때는 취업이 어려웠을 때였습니다. 지방대에 다니고 있던 저는 자신 있게 삼성전자에 원서를 썼고 보기 좋게 1차에 낙방했습니다. 그리고 몇 군데 더 원서를 쓰다가 포기하고 말았어요. 겨우 합격한 통신회사의 첫 월급은 과외로 버는 돈보다 적었어요.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취업을 포기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벌써 프리랜서로 어엿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부모님은 그런 저를 뜯어말렸지만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공부방을 시작했습니다.


3. 공부방 쌤


아이들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마치 고모나 이모를 만난 것처럼 제 앞에 철퍼덕 주저앉습니다. 물론 바닥에 앉는 것은 아닙니다. 편하게 앉으라고 만들어준 책걸상에는 자신들의 가방을 집어던지고 굳이 제 책상 옆에 앉아서는 미주알고주알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읊어 댑니다.


그런 이야기를 한 두 번 듣는 것도 아니니까 저는 한 귀로 흘리기도 하고 귀담아듣기도 합니다. 대부분은 듣기 싫다는 얼굴을 하고 관심 없다는 말을 하며 아이들을 밀어내기도 합니다. 그러면 기분이 나빠서 토라질 법도 한데 죽어라고 옆에 앉아 주머니에 넣어둔 사탕을 꺼내거나 과자를 꺼내어 줍니다.


그러면 저는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 들고는 이제 이야기를 좀 들어볼까 하고 의자를 끌어당깁니다. 한 명씩 이야기를 쏟아내면 그날은 운이 좋은 날입니다.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제 옆에 모여들어 각자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급기야 저는 소리를 버럭 지릅니다. 


니들 자리로 가!!


저는 공부방 선생님입니다. 한 번 수업을 시작하면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자리를 이동하지 않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부방 쌤입니다. 아이들의 일기장에 우리 쌤이라고 자주 등장하는 공부방 쌤이고 우리 동네 엄마들에게는 참 좋은 쌤이라고 소문이 난 공부방 쌤입니다. 굳이 자랑 한 번 해 봤습니다.


이제 일주일에 한 번씩 저는 공부방 쌤으로 살아가는 저의 우여곡절 많았던 저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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