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우는 게 나아요
공부를 시킨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의 경우 대부분은 학원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닙니다.
15살짜리 가비도 그랬습니다. 가비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갑자기 말을 하지 않는 아이입니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가비가 처음 우리 공부방에 왔을 때 한 달 동안 나는 가비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저 가비의 눈을 보고 대화를 하는 정도였죠.
말을 하지 않는 가비와 소통을 하는 방법은 카톡이었습니다. 일단 나는 가비의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 먼저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가비가 좋아하는 춤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가비가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은 두어 달이 지나면서부터였습니다. 묻는 말에 대답을 했고 묻지 않아도 시험 범위를 알려주었습니다. 큰 발전이었죠.
이런 경우는 욕심을 내면 위험합니다. 말을 하지 않는 아이는 자신의 감정 상태를 들키기 싫은 경우가 많죠. 그럴 때 마치 내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또는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이 접근하면 오히려 더 말문을 닫게 됩니다.
그럴 때는 기다려 주는 것이 상책입니다. 물론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기다린다는 것이 무척 힘든 일이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아이의 입장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소통은 꼭 말로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죠. 반년이 지났을까. 어느 날 모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 나는 가비와 둘이서만 남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갈 시간이 되었는데도 가비가 미적대고 있었습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걸까. 아무렇지 않은 듯 내가 먼저 가비에게 "왜?"라고 질문했죠.
딱 한마디였습니다. 왜? 그런데 가비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를 알아야 달래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위로가 욀 수 있죠.
나는 별말 없이 그저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한참을 울던 가비가 멋쩍은 듯 가방을 챙겼고 나는 가비를 집으로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리고 가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죠. 가비가 울었다고. 그런데 이건 왜 무슨 일인지. 가비의 엄마도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겁니다. 좀 당황스러웠어요.
가비의 아빠와 엄마는 다툼이 잦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가비의 아빠가 짐을 싸서 집을 나가셨고 두 분은 별거상태에 돌입하게 되었던 거죠.
그전부터 가비는 늘 엄마와 아빠의 눈치를 보던 아이였지만 엄마보다는 아빠를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런 아빠가 집을 떠나버렸으니 가비가 울었던 이유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지만-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죠.
아이들이 우는 이유는 참 다양합니다. 시험을 못 쳐서 우는 건 차라리 그나마 다행입니다. 학교 선생님과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서 우는 아이들도 있고 학교 친구들과의 오해를 풀지 못해서 우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달래주기보다는 울도록 내버려 두는 편입니다. 실컷 울었다 싶을 때 이유를 물어볼 때도 있고 그저 내버려 둘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달래주기를 원하는지 묻기도 합니다.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혼자 마음에 묻어둡니다. 하지만 그렇게 소리 내어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혼자 우는 것보다는 자신이 우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콧물, 눈물 다 쏟으며 울 때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나도 그랬던 때가 있었으니까요. 그때 누군가에게 내가 우는 이유를 말하는 것이 어려웠던 그때를 말이죠.
왜 우느냐고 묻고 아무렇지 않은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것도 싫었고 무슨 해결책이라도 내놓을까 봐 싫었습니다. 그냥 나는 울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고 혼자 울고 있으면 더 외로웠을 뿐이니까요.
곁에 누군가 있을 때 눈물이 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을 의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굳이 위로하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테니까요.
가비는 그 후로도 몇 번을 더 울었습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죠.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그럴 때는 답답한 속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방법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그랬구나. 그렇겠구나 라는 추임새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요즘은 가비가 더 복잡해졌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가비 아빠도 엄마도 돈벌이가 영 시원찮아졌기 때문입니다. 가비의 수업료는 벌써 5개월 밀려 있습니다. 가비의 엄마는 미안해서 아이를 보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가비는 다니고 싶다고 했습니다.
공부방은 가비에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인 것 같아요. 그런 공간과 시간을 돈 때문에 빼앗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별 일 없이 울기도 하지만 별 일이 있는데도 입 꼭 다물고 꼿꼿이 버티기도 합니다. 차라리 우는 게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