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뜻밖의 만남
누구나 살다보면 어려운 일을 겪습니다. 하지만 유달리 나에게만 그런 일들이 더 많이 더 자주 일어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제가 그래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얼마나 답답했으면 1년을 꼬박 사주팔자를 혼자서 공부하느라 밤잠을 자지 못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내 인생이 왜 이럴까 라는 물음에 그럴듯한 대답이 만들어지면 이게 내 잘못이 아니라 원래 그런거였다는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팔자가 참 세다'라고 하지요. 그런 말을 들으면 여간 기분 나쁜 것이 아니지만 가끔은 혼자서 그런 말을 하기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인생의 우여곡절을 나는 공부방을 하면서 버텼습니다. 때로는 참 버거운 직장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무척 고마운 직장입니다.
결혼을 해서 보니 남편에게는 단 한 푼의 돈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뒤로 물러서는 것조차 두려운 때였습니다. 시집에 돈이 많다는 것도 모두 거짓말이었고 이미 취업이 확정되어 있다는 것도 모두 거짓말이었습니다.
죽어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고들 하지요. 하지만 그 구멍이 너무 작아 보이면 아예 빠져나갈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구멍을 키워나갈 힘조차 없으니까요.
처음 며칠은 그냥 울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벌어서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은 내가 꿈꾸었던 결혼 생활이 아니었으니까요. 지금이라도 이혼 도장을 찍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결혼을 하면서 그만 두었던 공부방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먹고 살아야 했고 내가 벌지 않으면 돈을 벌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참 막막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경기도의 어느 작은 도시의 작은 회사에 영업 사원으로 입사를 했고 근처 작은 아파트를 얻어 나는 사람들이 모두 잠든 새벽에 일어나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대문 앞에 전단지를 붙였습니다.
가끔은 술 취한 사람들과 마주치기도 했고요.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계단에 앉아 하염없이 울고 있는 또래의 여성과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옆에 앉아 위로의 말을 건넬뻔 했어요. 동병상련 그런 감정이었을 거예요.
남편의 월급은 들쑥날쑥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아예 월급을 가져오지 못하는 날도 많았어요. 가져 온다고 해도 그것보다 더 많은 카드값이 날아오기도 했습니다.
한 달을 꼬박 하루도 쉬지 않고 전단지를 붙이고 다녔지만 별다른 호응은 없었습니다. 매일 울었던 것 같아요.이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궁핍했던 시간들은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주저앉고 싶었지만 주저앉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 부녀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부녀회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부녀회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 분이 직접 우리 집에 찾아와서 젊은 사람이 왜 부녀회를 하려고 하는지 궁금하다고 했어요. 그 동네는 나이드신 분들이 주를 이루었고 내 또래의 사람들이 부녀회를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아서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는 거였습니다.
참 좋으신 분이었어요. 나는 무슨 약에 취한 것처럼 난생 처음 보는 그 분 앞에서 나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먹고 살기 위해서는 당장 수업을 해야 한다고 말하며 그래서 사람들과의 교류를 늘리기 위해서 부녀회 활동을 꼭 해야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부녀회장님은 언제부터 수업을 할 수 있냐고 물으셨어요. "언제부터 내 아이가 여기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나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방금 내가 들은 말이 제대로 들은 말인지 확인을 해야 했습니다.
"제가요?"
"그래요.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언제부터 가르쳐 줄 수 있냐고요."
<다음주 월요일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