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깊이 잠들었을 새벽이었다
나는 사흘째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야경꾼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야경꾼 : 밤에 마을이나 일정한 구역을 돌아다니며 도둑이나 화재를 감시하고 순찰하는 사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겨우 잠이 들었을 때였다
카톡 알림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가?
뭔가 긴급한 일이 생겼거나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잠들지 못하는 단체 카톡방의 누군가일까
"선생님. 늦은 밤에 정말 죄송한대요. 저 정말 너무 힘들어요. 집에 있기 너무 싫어요."
"왜 공부가 힘들어?"
"아니요, 공부는 할 수 있는데. 너무 자세한 건 집안 사정이라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며칠 동안 투덜대던 아이의 말을 종합해 보면 아마도 부모님의 말다툼이
이전보다 더욱 심해졌다는 말인 것 같다.
열 네살의 아이에게 집이 싫은 건 어쩌면 너무나도 일반적인 일이다.
나도 그랬다. 집도 싫고. 엄마도 싫고. 아버지도 싫고. 언니들도 싫고
심지어 내 책상도 내 가방도 내 옷도 나도 싫었으니까.
그리고 문득 생각에 빠져 들었다. 나는 그 때 왜 그렇게 집이 싫었을까.
하루가 멀다하고 안방에서 울려나오는 싸움 소리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 놈의 싸움에 돈이 빠지는 일은 절대 없었고 지금까지 당신이 한 일이
도대체 무엇이었냐며 도토리 키재기 하듯 서로 누가 잘했네 못했네
그 소리는 마치 낡은 시계 태엽이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것처럼 지겨웠다
벽 너머로 들려오는 부모님의 목소리는 어린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되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거나 음악을 크게 틀어놓거나 아니면 그냥 훌쩍 옥상으로 올라가거나
집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정도는 아니었음에도 10대의 나에게는 그랬다
10대에게 사춘기는 당연한 일이다.
그 때 사춘기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20대라도 찾아온다는 말을
나는 가끔 상담 중에 하기도 하는데
그게 10대에만 찾아오라는 법은 없다는 말은
매 시기마다 사춘기는 찾아온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 : 개인차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만 11세부터 시작하여 평균 34년 정도 지속된다
성장이라는 것은 매번 크든 작든 산을 하나 올라가는 것과 같다
그런 산을 올라갈 때마다 힘에 겨워 풀썩 주저앉고 싶은 마음은
전문 등반가라 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10대를 지나 20대가 되면 세상은 온통 핑크빛이지 않을까 했지만
그건 어불성설이었다. 정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였음은
20대를 지나 30대 그리고 40대도 지나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해마다 그 놈의 산은 높아지면 높아졌지 절대 낮아지지는 않는다
다만 높은 산을 여러번 올라보면 나름의 요령이 생길 뿐이다.
사춘기는 어른들에게도 무조건 찾아올 수 있다
특히 부모가 되면 무조건 또 한 번의 질풍노도의 시기가 오는 것 같다.
평생 남이었던 사람과 가족이 되고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생긴다는 것은
내 평생 꿈에서만 오르고 싶은 히말라야 산과도 같을 수도 있다
10여년은 이 악물고 참고 버틸 수 있지만 그 이상이 되면
슬슬 억눌려왔던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사랑으로만은 절대 봐줄 수 없는 꼬라지들이 보일 것이다
사춘기는 삶의 중요한 변화와 책임을 마주할 때마다 반복되는
성장통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자미 내려놓고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부모라는 역할에 매몰되다보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이 찾아오게 마련이며 10년 넘게 참고 버텨왔던 희생과 노고가
보상받지 못하는 것 같아 서운함이 폭발한다, 누구에게? 나의 동반자에게
작은 일에도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며 사춘기 자녀처럼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이야, 라고 소리치는 것은 당연지사!!
한참을 머뭇거리다 나는 아이에게 톡을 보내기 시작했다
14년을 살아온 너에게 사춘기라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온 것처럼
14년을 살아온 부모님에게 결혼 사춘기가 오는건 당연한거야....
알아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