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관음사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고 하면 될까요. 남편과 사소한 말다툼을 하고서 영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나는 그날밤 늦게 이리뒤척 저리뒤척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말이죠. 어지간히 큰 일로는 사실 싸움이 일어나질 않아요. 오히려 아주 사소한 일로 감정이 삼하는 일이 많죠. 나는 그 날 우스갯소리롤 도대체 밥을 입으로 먹는거야. 턱으로 먹는거야. 왜 이렇게 흘려.라고 평상시에 하던 말을 그냥 반복하듯 툭툭 던졌습니다. 그러니까 평상시라면 남편은 그러게. 왜 이렇게 흘리기 하고는 근데 너는 젓가락짓을 하는거야 아니면 들고 폼만 잡는거야? 라며 맞받아쳤을 일인데. 이제는 별걸 가지고 다 잔소리냐고 무슨 말이 이렇게 많으냐고 버럭 소리를 지르지 않겠어요. 나는 정말 들고 있던 젓가락을 어찌할 줄을 모르기도 했고요. 갑자기 눈물이 핑 돌면서 '그래, 우리는 이제 말을 하지 말자.'라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평상시라면 남편은 10분도 안되어서 따라 들어와 미안하다고 했을 터인데 그 날은 무슨 마음에서인지 거실 소파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서운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해서 나는 벽에 기대고 앉아 네이버 검색만 무진장 하고 있었답니다.
그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주 항공권 검색을 하게 되었고요. 하늘이 도우신건지 어쩐건지. 다음날 첫 비행기에 자리가 있길래 냅다 예약을 해 버렸습니다. 일종의 복수 같은거라고 할까요. 남편은 늦게 잠을 자는 날이면 아침에 영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라 몰래 빠져나가서 하루종일 걱정을 시켜버리기로 작정을 한거죠. 냉장고 문을 여닫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 날 밤은 영 잠이 오질 않는 듯 하여 나는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답니다.
그렇게 남편 몰래 비행기를 타고 제주 공항에 도착은 했는데 딱히 갈 곳도 없고 렌트카 예약도 하지 않아서 일단 택시를 타기로 했어요. 계획없이 훌쩍 여행을 떠나는 날에는 사찰만큼 편한 여행지도 없고 하여서 저는 관음사로 향했습니다.
제주를 대표하는 사찰 관음사는 한라산 북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어요. 고려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일제감정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꽤 힘든 시기를 겪은 곳입니다. 무엇보다 여기는 길게 뻗은 돌길 양쪽으로 줄지어 서 있는 작은 불상들이 인상적인 곳인데요. 더불어서 알록달록한 등들이 마치 길을 안내하는 것처럼 천왕문에서부터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이 길에서는 누구라도 카메라를 꺼내들지 않을수가 없어요
뒤편 언덕에는 거대한 금동불상과 수많은 위령탑, 그리고 추모비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풍경이 좋은 제주 관음사에 이렇게 비석이 많은 이유는 바로 4.3 사건과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우리 스스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기대는 제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 그리고 각종 사회단체가 조직되면서 도민들의 자치와 통일에 대한 열망은 활활 타올랐습니다. 하지만 미군정과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원하였고 이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을 좌익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했지요. 당시 제주도에는 일제 시대에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경찰과 관료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갈등은 더욱 심하였던 찰나, 1947년 3월 1일, 제주시 관덕정 앞 3.1절 기념행사에서 말을 놀리던 기마 경찰이 아이를 치어버렸습니다. 그냥 미안하다고 사과 한마디 하면 되었을 것을 경찰은 이를 못본척 하였고 군중이 항의를 하자 발포를 하면서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도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중앙정부와 미군정은 제주를 빨치산의 섬으로 몰아붙이고 대규모 토벌 작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약 3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청죄며 행방불명된 사람들만 최소 4천 명이 넘었고 섬 전체는 피로 물들었던 4.3 사건은 2023년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함께 비로소 진상 규명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4.3 당시 한라산은 토벌과 진압 작전의 핵심 지역이었습니다. 관음사 일대는 토벌대의 임시 주둔지와 집결지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인근 망르 주민들이 끌려와 집단 희생을 당한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제주 관음사 건물들은 큰 피해를 입고 거의 기능을 상실하였으며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솨려한 모습은 전쟁 이후 재건되면서 4.3 희생자들을 기리는 공간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꽤 오랜 시간 천천히 걸어 보았습니다. 때맞춰 내가 미안하다는 남편의 카톡이 왔고요. 이게 내가 사과를 받아야 할 일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참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혹시라도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까지 왔다는 말을 하면 화를 내지는 않을까 잔뜩 긴장하면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괜히 민망하기도 해서 관음사에 얽힌 이야기들을 주저리주저리 읊어댔고 아무말 없이 그 긴 이야기를 듣던 남편은 대웅전 앞에 있는 설문대 할망 소원돌에게 소원 하나 빌고 오라고 하더군요.
피식 웃으며 나는 간절히 소원 하나를 빌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돌을 들어올려보았어요. 일부러 힘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돌이 묵직하게 당기는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고 우겨 보겠습니다.
제주 관음사는 뒷짐 지고 천천히 걸어보기에도 좋은 곳입니다. 지금 같으면 보온병에 담아간 따끈한 코코아 한 잔과 함께 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고요. 호젓한 시간을 보내며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았던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