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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Aug 12. 2021

'젊은 작가'들이 새롭게 비추는 조명

전하영 <우리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를 읽으며

내가 쓰고 싶은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사과는 상대앞에서 '미안해'하는 혓바닥운동이 아니었다. 뭔가 티나지 않게 상대를 후려친것 같은데 나 스스로는 가해자가 아니라고 믿는 것들. 그런 것들을 자각하고 싶었다. 그 자각을 너한테만 있는 특별한 일이 아닌 누구나 갖고 있는 서사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문학이었다. 마찬가지로 '젊은작가'들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눈알굴리기 운동으로 머물지 않게 다시 한번 더 행간의 숨은 뜻, 나한테 들키고 싶은 어떤 것을 읽어내려고 안간힘을 내야한다.


그것은 내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고투였다.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문학동네,2016)나 《내게 무해한 사람》(문학동네,2018)에 실린 단편들이 그 포문을 열었다. 계속해서 과거를 길어올리며 어떤 폭력, 어떤 상처, 배려깊지 못했던 내 행동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다시 되돌릴수 없는 지난날을 처절하게 후회하며 얻어진 감각을 내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글쓰기였다. 나는 내 서사만 보면서 너무 오랫동안 내 멋대로 살아온 것이다. 문학은 그 언어를 등한시했던 내게 너무 늦게 찾아왔다.  

    

《2021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2021)의 모든 단편이 다 좋았지만 마지막에 읽은 대상작 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가 가장 좋았다. (아무래도 작가가 자신의 단편집을 내야 할 때는 제목을 바꾸어야 할 듯 싶다. 긴 문장의 제목을 정확히 기억해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대학연구실에 계약직 직원인 30대 후반의 화자는 흡연실에서 가끔 만나 말을 트게 된 중년의 유부남박사에게 호감을 갖게 되면서 시작한다. 스물한살 여대생과의 연애를 암시하며 젊다고 자부하는 그를 보고 자신의 대학생 시절 '장 피에르'로 불렸던 교양과목 강사를 호명하게 된다.


인기가 많았던 친구 연수를 시기하고 연수를 쫓는 장피에르의 눈빛을 욕심내며 예술과 청춘, 세 사람을 감쌌던 이미지들이 ‘나’의 시선으로 소환된다. 독자를 의식하는 '나'의 독백은 모호하지만 그럴듯하게(내가 쓴 에세이가 그렇듯이) 독자를 설득하려 한다. 서른을 훌쩍 넘겨 다시 만난 연수에게 아직도 '나'는 '매사에 분명한 여자'는 자신으로, 연수를 '모호한 여자'로 단정짓는 폭력을 저지른다. '나'의 그런 오만을 깨닫게 해준 것은 연수가 보낸 답문이였다. 화자도 독자도 이때 화들짝 깨어난다.

우리는 기록하는 여자가 될 거야.
우리가 겪은 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생각할 거야.
나는 그렇게 되리라고 믿어.(56쪽)


‘나’의 시각에서 청춘의 이미지를 편리하게 단정지었던 오류에서 빠져나오게 만든 것은 과거를 향한 질책도 충고도 아니었다. 연수가 내보인 미래였다. 우리가 주체가 될 미래를 일깨우며 ‘나’를 그곳에서 꺼내준 한마디. 세련되게 일갈하는 전하영작가의 글이 너무 멋졌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소설을 읽는다. 이번엔 연수가 되어서.      


‘나’는 연수에게 영향을 받고 상처를 받은거 같은데 연수가 되어 읽어보니 ‘나’의 모든 말과 행동이 연수를 배려하지 못하고 폭력적이다. 동경해 마지않던 예술의 잔상(장피에르)에 우리는 결코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을 연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했다. ‘다 소유하고서도 불행을 찾아낼 수 있는’ 남성 작가들이 만든 조명등 아래를 벗어나지 못하고 주체가 되기를 거부했던 ‘나’의 모습이 보인다. 소설이 완전히 새롭게 읽힌다.


그러니까 나는 더 빠져나와야 한다. 시인 말라르메가 욕망했던 자아를 비운 텅빈 상태, 나를 죽이지 않으면 겉멋만 잔뜩 들어간 반성을 흉내낸 글, 결말을 향해 달리는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나를 타자처럼 보기 위한 상황묘사도 이토록 양면적일수 있는데 몇 겹을 떨쳐내고 멀어져야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일까?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이 거짓일수도 있다는 의구심, 거듭해서 읽기와 벗어나서 글쓰기는 거기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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