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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Mar 10. 2022

러시아의 작가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러시아 문학 입문서 고골의 단편 <뻬제르부르그 이야기>

1월 도서목록에 러시아문학을 넣고 싶었는데 다른책에 밀렸어요. 러시아의 작가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할정도로 러시아문학의 뿌리입니다. 적과 흑에서 쥘리앵이 마틸드와 밀당에서 밀리고 있을 때 러시아사람인 크라소프 공작이 ‘유혹의 기술’을 선사하지요, 당시에 러시아 귀족들은 프랑스 상류문화를 흠모하고 있었고 프랑스보다 50년정도 느린 국가라고 스탕달도 언급합니다. 스탕달과 발자크와 동시대를 살았던 고골의 <뻬제르부르그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그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렇게 지척의 프랑스문물을 흡수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했던 러시아, 공화정이 뿌리내린 혁명의 시발점이었던 프랑스와는 달리 러시아는 사회주의 체제의 길을 선택하기에 이르죠. 그 러시아가 지금은 끔찍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더욱 러시아에 대해 알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늦었지만 저는 지금부터 러시아도 공부해 보려합니다. 인간은 환경과 처지, 체제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니까요.


* 제 글들은 이야기의 결말을 알려주는 스포일러를 가급적 자제하고 고전문학 입문자를 위해 기본지식과 태도, 헤프닝이야기하며 풀어나갑니다.

 

이 책의 첫 단편 <코>는 현실세계의 환상성을 '코'를 통해 폭로하면서 어렵지 않고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발사 이반 야코블레비치가 아침을 먹다가 빵에서 코를 발견합니다. 며칠전 면도를 해줬던 8등관 꼬발료프의 코에요.  으악~저도 모르게 제 작은 코를 움켜쥐었습니다. 이때부터 수수께끼가 시작됩니다. 여러분도 풀어보세요.

'뻬쩨르부르그'는 표트르대제가 대대적인 서구화 정책을 표방하며 늪지대를 메워 지은 신도시(?)입니다. 마치 계급처럼 관료를 15등급으로 나누어서 각각의 직위를 복장만 봐도 알 수 있나봐요. 그런 뻬쩨르부르그 관료들에게 '코'란 무엇일까요? 이거 없어도 사는데는 별 문제가 없나봐요. 빵속에 넣고 구워도 그대로인 코! 남들이 볼까봐 길거리에 버릴수도 없구요, 강물에 던져도 가라앉지 않아요~ 5등관 깃털을 꽂고 사람처럼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자긴 하층민도 아니고, 나름 8등관인데 이거 없으면 사람들도 날 비웃을 것이고, 결혼은 물론 승진도 못하고 밖에 나갈수가 없어요.


교양? 자존심? 페르소나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침에 도서관에 다녀오다가! 딱 생각이 났습니다. 얼굴에서 유일하게 솟아있는 작은 산. 삭막한 뻬쩨르부르그 사람들에게 겨우 남아있는 이 '코' ㅋㅋㅋ

지키기 싫어도 지켜야 하는 무엇일 수도 있고, 남들 앞에 내세워야 하는 어떤 것일 수도 있겠죠. 다양한 해석이 열려있는 단편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언급한 <외투>도 읽어봐야죠.

이번에는 9등관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이야기에요. 추운 나라 러시아에서 외투가 갖는 상징성이 정말 많아요. 아까끼는 너무 낡은 외투대신 새 외투를 마련하기 위해 근검절약을 하면서 성실히 일만 하며 돈을 모읍니다. 드디어 뻬뜨로비치라는 재단사에게 외투를 맞춰서 근사하게 출근을 하죠. 새 외투를 입는 순간 새로운 세계를 만납니다. 그 행복도 잠시, 새 외투 덕분에 파티에 초대받게 된 아까끼는 돌아오는 길에 강도를 만나 외투를 빼앗기고 맙니다.

'새외투'라는 세계를 알게 되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지만 그것은 자신이 살아온 지난 세계와의 단절이기도 하죠. 하지만 외투에 기대어 얻은 세계는 위태롭고 불안합니다. 그것을 빼앗긴 아까끼는 어떻게 될까요? 버리지 못하고 걸어둔 낡은 외투를 입게 될까요? 사람의 욕망과 권력과도 같은 이 '외투'에게서 많은 것들을 봅니다.


이렇게 단편들에는 모두 공무원 즉, 관리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급으로 나누어져 철저하게 계급체제로 운영되는 이 뻬제르부르그라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욕망과 고독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도 많이 닮아있지요.


<광인일기>는 자신의 관직으로는 넘볼수 없는 장군의 딸을 사랑하게 되면서 정신착란을 일으키며 미쳐가는 한 9급관리의 이야기가 일기형식을 빌어 펼쳐집니다. 자신이 왕일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의심으로 시작되며 결국 정신병원에 갇히며 관료제와 인간의 모순을 깨닫는 과정이 인상깊습니다.


<초상화>는 그 도시에서 성공을 꿈꾸는 화가의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화가는 우연히 눈빛이 강렬한 노인의 초상화를 사게 됩니다. 그 강렬한 눈빛에 압도당한 화가는 우연히 초상화에서 숨겨진 금화를 발견해 욕망에 눈을 뜹니다. 초상화 사업으로 부자가 되지만 자신은 그릴 수 없는 훌륭한 그림을 그린 동료에게 증오와 시샘에 사로잡혀 인생을 망치고 말아요. 

저는 욕망과 태도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결 초상화에 얽힌 과거가 밝혀지면서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요. 평범하지만 이야기속에 녹아있어서 공감과 위로를 많이 받았네요.


세상 사람들이 그림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그들은 카드놀이를 잘하고 맛있는 술이나 말의 의미를 알고 있다.
지주 귀족들이 어떻게 그 이상을 알겠는가?(중략)
사람에게는 각자의 길이 있기 때문에,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하게 내버려두면 된다.
내 생각이지만, 모르는 것도 아는 체하고 남을 타락시키거나 더럽히는 사람보다는,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는 사람이 훨씬 훌륭하다. (p.208)



<네프스끼거리>는 실제 상트 페테르부르그 안의 있는 대로로 수도원까지 4.5km까지 넓게 뚫려있는 번화가입니다. 그 길로 쏟아져나오는 사람들을 고골은 아주 예리하고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19세기의 네프스키 대로 풍경

그 곳에서 친구인 화가와 5급관리는 맘에 드는 여성을 발견하고 각자 그 여성을 쫓아가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화가가 쫓아간 여성은 매춘부였지만 스스로의 미학에 갇힌 화가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농락당하지요. 나름 높은 관직인 5급공무원이 쫓아간 여성은 유부녀였습니다. 소시민의 가정에 난입해 아무렇지 않게 행패를 부리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이 남자 또한 네프스키 거리가 낳은 한 사람이겠지요.  


모든 단편이 인상적이었지만 하나의 단어만 남기라면 역시 '외투'를 남겨두겠습니다. 지금은 아주 좋은 외투를 입고 있음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제 모습이 반성도 되구요, 그러면서 헌 외투를 입고 만났던 사람과 삶을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멀리서 아까끼를 보다보니 반문을 해보게 됩니다. 외투를 욕망하기 전이 좋았을까? 외투를 욕망하며 자신을 인내하고 살았던 시절이 좋을까, 새 외투를 얻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때가 좋았을까? 아니요, 다시 다시요. 좋은 외투는 날 행복하게 해주지만 '새외투'만을 위한 삶은 곧 죽음임을 자각하며 살아야지요.

  

이 네프스끼 거리라는 건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 무엇보다도 밤이 거리의 구석구석까지 들어차고 짙어지면서 하얗거나 크림색으로 빛나는 집 벽들이 드러나게 될 때, 도시 전체에 굉음과 번쩍이는 불빛이 넘쳐흐른다. 무수한 마차가 다리 쪽에서 몰려오고 마부가 고함을 치며 말 위에서 뛰어내릴 때, 그리고 악마가 모든 것들을 실제 모습으로 보여주기를 거부하고 램프의 불을 직접 켤 때, 네프스끼 거리는 더욱 심하게 사람들을 속인다.(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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