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일반 - 조직도로 보는 조직의 흥망성쇠
실무일반편 목차
1. 거절법
2. 프로젝트리딩
3. 협의1: 사전 시뮬레이션
4. 협의2: 진짜 욕구를 찾아라
5. 회의리딩
6. 회의록과 시스템
7. 자료 중간리뷰
->이번글: 8. 조직도와 개인의 커리어
“김 차장 형님, 이제 어쩐대?”
“왜?”
“팀이 구조조정되면서 다른 부서로 옮기게 됐잖아.
그 연차에 갑자기 옮기면,
아무리 차장이라도 굴러온 돌 취급이지.
부장 승진은 물 건너간 거지 뭐.”
“받는 명 부장이야 원래 자기사람만 챙기잖아.
김 차장은 그냥 자리만 채워주는 거고.”
“작년 워크숍 때 우리가 조심스럽게 말했었는데 말이야.
'형님 팀은 분위기가 조금 약해지는 것 같다'고.
그때 팀 옮겼으면,
지금쯤 팀장 자리는 하나 꿰찼을 수도 있었는데.”
“성실하긴 진짜 성실한데… 너무 순진한 건지,
아니면 세상 돌아가는 감각이 없는 건지.”
회사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아주 흔한 대화입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하나입니다.
"능력만으로 되는 건 아니라는 것."
실제로는, 어느 조직에 소속되어 있는가,
회사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그리고 그 가치가 ‘조직 구조’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가
개인의 커리어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주곤 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조직도’를 통해
회사가 어떤 철학과 전략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커리어를 설계해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한 번 상상해봅니다.
내가 일하는 회사는 핸드폰을 만드는 곳이고,
고객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환경을 대비해
방수, 충격, 낙하 등 여러 가지 시험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제품을 설계하는 팀이 있고,
시험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팀이
따로 있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인력 효율화를 이유로
설계 엔지니어가 시험 엔지니어 역할까지
겸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실제 시험은 외주 업체가 하더라도,
pass/fail 여부나 일정 관리는
결국 내부 엔지니어가 판단하게 됩니다.
그 상황에서 과연,
자신이 직접 설계한 제품을
스스로 "불합격"이라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 결정이 제품 출시를 늦출 가능성이 있다면
더더욱 쉽지 않겠지요.
시험의 독립성이 사라진다는 건,
결국 고객 안전보다 일정 준수가
우선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놀랍게도, 실제 글로벌 경쟁사 중 일부는
이런 구조로 운영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설계팀과 시험팀이 분리돼 있더라도,
두 팀이 같은 상무 아래에 있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진행을 멈추는 역할을 하는 시험팀보다는
일정을 맞추는 설계팀 쪽에 무게가 실리기 쉽습니다.
결국, 시험팀이 내린 fail 결정을
'이게 진짜 fail이 맞는거야?'
라며 압력을 가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죠.
그래서 어떤 회사는
시험팀 상무나 그 이상의 리더십을
아예 설계팀과 완전히 분리해 두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시험팀이 외부의 정치적 압력 없이
"불합격"이라는 판단을
자유롭게 내릴 수 있어야 하니까요.
이런 조직 구조를 갖춘 회사는,
효율보다 고객의 안전을
더 우선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직도를 보면,
이 회사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걸 알게 되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어떤 기준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지
자연스럽게 방향이 잡히게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태도/마인드 – 미션인지 편』 참고)
제가 몸담고 있는
원가팀 사례를 하나 공유해보겠습니다.
현재 한 명의 상무 아래
협력사 제품 원가 엔지니어가 약 100명,
협력사 개발비 원가 엔지니어는
10명 남짓 배치돼 있습니다.
차량의 제품 가격이 $1만 바뀌어도
생산 대수에 따라 전체 영향이
상당한 단위로 번지기 쉽습니다.
반면, 개발비는 대부분
협력사에 초기에 일괄 지급되는 구조라서
비용 구조상으로는 훨씬 작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럴 경우 회사는 자연스럽게
‘impact가 더 큰 쪽’에 인력을 집중하고,
덜 중요한 쪽부터 줄이려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실제로 구조 조정시에 한쪽이
훨씬 더 영향이 큰것같습니다.)
조직도를 보면,
이 회사가 ‘어디에 더 민감한가’,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는가’가 보입니다.
그걸 읽을 수 있다면,
어떤 업무가 더 오래 남고,
어떤 업무가 곧 흡수되거나 없어질지
미리 감지할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품 하나에
두 명의 원가 엔지니어가 붙는 구조였습니다.
한 사람은 프로그램 초기 단계에서
예상 원가를 예측하고,
다른 한 사람은 계약 이후
실제 원가를 관리하는 방식이었죠.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제품의 히스토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이 이해하고 책임지는 쪽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늘고 있습니다.
아직은 일부 팀에서 반발도 있고,
조직이 완전히 통합된 건 아니지만
효율과 성과 측면에서
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흐름은
조직도를 보면 쉽게 감지됩니다.
어떤 조직에 속했느냐에 따라,
그 조직이 줄거나 통합되거나 약화되면
개인의 커리어도 함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직도를 단순한 보고 체계도로만
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 안에는
회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어느 조직이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는지,
상위 포지션이 어디에 더 많이 열려 있는지
등의 전략적 단서들이 담겨 있습니다.
조직도는 회사의 철학을 보여주는 지도이고,
동시에 나의 전략을 설계할 수 있는
나침반이기도 합니다.
이제 여러분의 손에는
나침반이 하나 쥐어졌습니다.
오늘부터는 이 나침반으로
방향을 읽고, 길을 만들며,
훨훨 날아오르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