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 하급자와의 관계
“이 사원, 지금 시간 돼요?
협력사별로 받은 이 자료들…
템플릿 A 형식으로 변환해서 오늘 중으로 좀 부탁드릴게요.
내일 오전에 이걸 기반으로 계산 들어가야 해서요.”
“네! 최대한 빨리 정리해서 드릴게요!”
…그리고 퇴근을 1시간 남긴 오후.
자료가 도착했다.
하지만, 김차장의 이마에 바로 주름이 잡혔다.
이건… 템플릿 A가 아니다.
처음 보는 형식이다.
그리고, 후배는 기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A 템플릿은 운송비, 관세 항목이
나중에 일괄 처리되잖아요.
정확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그래서 재료 하나하나에
실제 운송비랑 관세를 직접 계산해서 반영했어요.
총합은 맞습니다. 오류는 없어요.”
물론 이해는 된다.
이게 ‘더 정확할 수 있다’는 것도.
그런데…
내일 오전 보고에는 이전 자료와 1:1 비교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 기준은 A 템플릿이었다.
김차장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지금 내가 다 고쳐야 하나?
시간은 없고, 애들 픽업도 있고,
아… 그냥 내가 할까?’
하지만 그보다 더 복잡한 건 —
이걸 어떻게 말하지?
‘내가 템플릿 A라고 분명히 얘기했는데…
이걸 왜 이렇게 했지?’
화를 낼까?
말없이 고칠까?
좋게 말하려 해도, 이건 분명히 지적이 될 텐데…
나 역시 알고 있다.
“화를 안 내면서 지적하는 법” 같은 건 현실에선 거의 없다.
마치 공부 안 하고 명문대 가는 법을 찾는 것처럼.
지적을 하는 순간,
상대가 ‘잘못했다’는 감정을 느끼는 건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정한 다섯 가지 원칙을 꺼내본다.
지적을 할 땐, 감정이 남아있으면 안 된다.
솔직히, 이 상황에서 바로 말하면 톤이 올라간다.
내 말이 아무리 맞아도, 상대는 “말투가 기분 나빠”만 기억하게 된다.
그러면 업무적 지적은 사라지고, 감정만 남는다.
그래서 나는 하루를 기다린다.
아직도 화가 나면, 하루를 더 기다린다.
그러면 목소리가 낮아지고,
말투가 부드러워진다.
그건 나를 위해서도, 후배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후배도 나름 고민한 흔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이게 더 정확할 것 같아서요.”
그 마음은 알아줘야 한다.
“정확하게 하려는 시도 좋았어요.
디테일하게 계산한 것도 잘했네요.”
잘못된 결과보다,
노력조차 무시당하는 순간에 더 깊은 상처가 남는다.
“이번 자료는 이전 보고 자료와 1:1 비교를 해야 해서,
형식이 같지 않으면 계산 기준이 바뀐 걸로 오해할 수 있어요.”
문제의 ‘맥락’을 말해주면,
지적이 ‘합리적인 피드백’으로 들린다.
이건 정말 효과적이다.
“내가 처음에 A 템플릿으로 해달라고 말은 했는데,
그 이유까지 명확히 설명은 안 드렸던 것 같네요.
내가 좀 더 디테일하게 설명했어야 했어요.”
이 말 하나면, 후배도 마음이 풀린다.
“내가 혼나는 게 아니라, 같이 더 나은 방법을 찾는 중이구나”라는 인식이 생긴다.
“나도 사실 이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이 고민했어요.
그냥 내가 다시 하자니 시간이 없고,
그렇다고 지적하면 기분 나쁠까 걱정되기도 하고요.”
이렇게 말하면,
그 자체로 후배는 존중받는 느낌을 받는다.
그 다음날 아침.
후배가 다시 다듬은 자료를 들고 온다.
“수정해서 다시 해봤어요. 이건 템플릿 A 형식입니다!”
김차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이제 됐어.’
그 순간, 후배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차장님, 이따 이거 자료 정리 끝내실때 쯤 저희 커피 마시러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요 앞에 가게 새로 생겼잖아요.”
지적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계속 함께 일할 수 있는 협업의 기술이라고 보는게 맞을듯합니다.
특히 MZ세대는 우리세대보다 유약해서가 아니라,
‘존중’과 ‘배려’가 우리보다는 더 강조되는 문화에서
자랐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금 더 이해하기 수월할듯합니다.
결국, 지적은
후배를 위한 것도, 회사를 위한 것도 아니고
우리 자신이 사람관계에서 덜 피곤하게,
오래 함께 일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보는게 맞을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