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과 삶: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되는가
한때 중국 기업들이 한국의 핵심 인재들에게
현재 연봉의 9배를 제시하며 러브콜을 보냈던 적이 있습니다.
만약 지금 당신이 그런 제안을 받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언어도, 문화도 모르는 나라에서 몇 년간 일하고 돌아오는 조건.
더 큰 집과 차, 든든한 통장 잔고를 얻는 대신,
퇴근 후 당신의 저녁 식탁은 쓸쓸히 비어 있겠지요.
미국에서 일하며 가장 크게 느끼는 장점은 ‘워라벨’입니다.
물론 뉴욕의 금융권이나 실리콘밸리 일부처럼,
한국 못지않게 실적 압박과 긴 근무시간에 시달리는 곳도 있죠.
하지만 제가 사는 미국 중동부의 일반 기업들은
대부분 주 40시간 근무가 기본입니다.
아침 8시에 시작해,
점심은 책상에서 간단히 먹으며 일하고,
오후 4시면 하루를 마칩니다.
근태가 심하게 나쁘지 않은 이상,
4시보다도 일찍 퇴근한다고 누가 뭐라 하진 않습니다.
다만 한국에서 일할 때보다 업무 강도는 더 높습니다.
담배 타임도, 커피 타임도 없이 일만 하는 분위기.
한 사람이 맡는 업무 범위가 넓고,
재량이 큰 만큼 책임도 무겁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더 넓은 집을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 자연스레
더 높은 연봉을 주는 회사들의 채용공고가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연봉이 높아지는 만큼, 저녁 시간은 줄어든다는 것을.
한국 시간대의 회의가 저녁을 덮치고,
출장 일정이 잦아지고,
주말에도 업무 메일을 열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 순간,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정말 더 큰 연봉이 필요한가,
아니면 내가 지켜온 40시간의 경계가 더 중요한가?”
그 답을 찾는 데, 한 노인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분은 공무원이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능력으로
최연소 승진 기록을 갈아치우며 최고직까지 올랐죠.
그리고 대통령 훈장을 무려 네 번 받았습니다.
명절이면 손님이 몰려와 일일히 차려드릴수 없어
음식을 부페식으로 차려야 했고,
‘우리 손자는 초코파이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라는 말이 퍼져,
손님들이 초코파이를 한 상자씩은
꼭 추가로 들고 올 정도로 북적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분이 은퇴한 뒤, 집은 조용해졌습니다.
찾아오는 사람은 1년에 한두 명.
남은 건 주말에 찾아오는 따님과 손자뿐이었습니다.
네, 저는 그 초코파이를 좋아하던 손자였죠.
화려했던 명예와 성취가 사라진 뒤,
남아 있는 건 가족과의 시간이었습니다.
외할아버지의 외로움과 허무함은 제게 분명히 말하고 있었습니다.
“직장에서의 성취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결국 기억에 남는 건, 함께 보낸 시간과 추억이다.”
그래서 저는 제 연봉의 기준을 주 40시간에 맞추기로 했습니다.
그 이상 시간을 투자해서 얻는 수입은 포기합니다.
이건 감정이 아니라,
후회가 적은 삶을 위한 전략적 선택입니다.
물론 갈등이 없진 않습니다.
네 살도 안 된 두 아이를 퇴근 후 돌보는 건
체력적으로 쉽지 않고,
젊은 동료들이
야근과 주말을 불사하며
실적을 올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이 일에 시간을 조금만 더 쓰면 반응이 클 텐데’라는 유혹은 매주 찾아옵니다.
그럼에도 저는 외할아버지의 메시지를 믿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만들고, 먹고, 놀고, 재우는 평범한 하루가
나중에 돌아봤을 때 가장 값진 시간이 될 거라는 믿음 말입니다.
운 좋게도 지금까지는
40시간을 지키면서도 고 성과자로 분류되어
평균 이상의 연봉 인상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더 높은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해
평균 인상률에 머물게 된다면,
그게 제 연봉의 상한선이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남들보다 조금 작은 집,
조금 덜 좋은 차를 타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내가 선택한 삶의 범위 안에서
감당하는 결과입니다.
저는 집과 차 같은 큰 자산을
‘갚아나가기 위해 일하는’ 순간,
그 빚이 제 자유와 행복을 침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유는 최소화합니다.
우리 집 차 두 대는 모두 중고차입니다.
그 대신 시간과 에너지는 경험을 사는 데 씁니다.
뮤지컬, 여행,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액티비티,
근사한 식사처럼
물건으로 남지 않지만
기억으로 오래가는 것들에 투자합니다.
그 경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고,
삶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직업은 세 가지 목적을 가집니다.
생계 – 필요한 것을 마련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수단
성취감 – 내 능력을 발휘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자기 효능감
삶의 방식 – 시간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결정하는 틀
저는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일정 수준에서 만족시키되,
세 번째—‘삶의 방식’을 우선순위에 두기로 했습니다.
조금 덜 가지더라도,
매일 저녁 식탁에서 가족과 나누는 웃음을 지키는 것.
아이와 함께 목욕하며 물장구를 치고 장난치는 것.
자전거를 타고 가며 “이건 ○○꽃이야” 하고
이름을 새로 알아가는 것.
거실 바닥에서 풍선을 튀기며 깔깔 웃는 것,
손에 물감을 묻히고 종이에 색을 퍼뜨리며
놀아주는 것.
이 평범한 하루들이,
훗날 저를 가장 부유하게 만들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일하는 이유이자,
40시간을 고집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