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의 근본 - 인본
“탐, 내 밑에 나머지 9개 팀은 전기차에 대해 까막눈이야.
모두 엔진차만 20년 넘게 해온 사람들이라고.
이번에 새로 넘어오는
배터리 관련 부품 시험은 자네 팀이 맡아 줘야겠어.”
미국에 처음 왔을 때였습니다.
우리 전기차 동력부품 시험팀은 부문 내에서 늘 ‘별종’ 취급을 받았죠.
부문 안에는 엔진차 부품 시험팀이 10개나 있었지만,
전기차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자동으로 불려가는 건 우리 팀장이었습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얼마전 새로 부임한 젊은 상무는 전기차 얘기를 듣자마자 우리 팀장 탐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제 전사적으로 전기차 프로그램이 커지면서,
배터리 관련 부품 시험까지 우리 쪽으로 넘어온다는 겁니다.
“그쪽 인원도 같이 넘어옵니까?”
탐이 물었습니다.
“배터리 시험 부문하고 협의해봐야지.
최대한 그렇게 해볼게.
조직 커지면 실장 자리 가는 거 아냐? 진급할 절호의 기회지.”
탐의 표정이 잠시 멈췄습니다.
실장—팀장이 올라갈 수 있는 마지막 자리.
그 자리에 오르면 조직은 두 팀으로 나뉘고, 그 위에 자신이 선다.
25년 경력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할 기회입니다.
하지만 곧, 탐은 차분히 말을 이었습니다.
“그쪽도 인원 부족하다고 아우성인데, 쉽게 내주진 않겠죠.”
상무는 웃으며 말을 눌렀습니다.
“그래도 받아서 시작하는 거야.
인원은 나중에 충원하면 되지.
실장 자리 쉽게 나는 거 아니야. 이건 기회야.”
새로온 상무가 본인도 자리 잡기위해
상대편 배터리 부문에
이미 호의적으로 얘기했나 봅니다.
탐이 시원시원하게 대답했습니다.
“업무에 최소 네 명이 필요합니다.
그 네 명이 당장 넘어오면 받겠습니다.
인사 확답 없으면… 못 받습니다.”
탐이 단언하듯 말했습니다.
그 순간, 회의실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실장은 속으로 ‘이 기회를 걷어차네?’ 하고 놀랐을 겁니다.
실장—25년 경력의 마지막 화려한 타이틀이 눈앞인데 말이죠.
그때 나는 알았습니다.
상무는 우리 팀의 진짜 사정을 모른다는 걸요.
우리는 이미 타 팀보다 업무 강도가 훨씬 높았습니다.
전기차라는 미래 먹거리를 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밤낮없이 버텼죠.
그리고 우리 팀은 그야말로 ‘어벤져스’였습니다.
각자 다른 분야에서 타 팀이 탐낼 만한 실력자들.
상무도 알았습니다.
탐이 시키면 우리는 미국에서도 야근을 불사하고 어떻게든 해냈다는 걸.
하지만 그는 간과했습니다.
우리가 탐을 잘 따르기 때문에,
추가 업무를 시켜도 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건 역설이었죠.
우리가 탐을 잘 따른 건,
그가 우리를 함부로 부리지 않고,
항상 사람부터 챙기는 리더였기 때문입니다.
탐의 리더십은 제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윗사람이 듣고 싶은 달가운 말을 안하고
본인의 영화도 미루던 탐은
결국 실장을 달지 못하고 퇴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명절마다 연락하고,
때로는 모여 옛날 얘기를 합니다.
그가 우리를 지켜줬듯,
이제는 우리가 그를 아끼고 싶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