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철 지난 이야기들은 하지 않기로 해요

Dyspnea#120

by Ma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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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질을 할 줄 알아야 젓가락은 쓸모가 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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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타인을 내 잣대로 평가하고 분류하는 것처럼 타인도 나를 그들의 잣대로 평가하고 분류해놓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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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 살았던 곳을 정리했다. 짐은 생각보다 많기도 했고, 생각보다 적기도 했다. 어차피 퇴실 청소가 진행되기 때문에 굳이 깨끗하게 치울 필요는 없지만 짐을 다 빼고 청소기도 돌렸다. 퇴실이든 퇴사든 내가 있었다는 흔적을 깨끗하게 지워놓을 것. 왠지 그러고 싶다. 다음 주에 퇴사를 말하니 이번 주의 퇴실은 퇴사의 예행연습과 가깝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지만 내가 이곳에 있었던 것을 몰라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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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오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 루프탑에 올라가 마지막으로 책을 읽었다. 참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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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모시고 내가 여기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장 맛있게 먹었던 안암에 가서 국밥을 먹고 계동과 원서동 이곳저곳을 걸으며 소개해드렸다. 혼자 힘들었을 때 자주 찾아갔던 공간이기도 한 북촌 서재에도 모시고 가고. 원래 계획은 종묘대제를 보거나 혹은 부암동 환기미술관과 석파정 미술관을 가는 것이었지만 둘 다 티켓팅에 실패해서 처음에는 창덕궁을 걷기로 했다. 안암에서 웨이팅이 꽤 길어져 위에 있는 정독도서관에 가서 정자에 좀 앉아서 이야기도 하고, 밥을 먹고 나온 후 원서동도 보여드리고 싶어 빨래터까지 걸었다가 나왔는데 다리가 아프시다고 했다. 마음 같아선 서순라길도 보여드리고 싶었으나 그게 내 욕심이라는 것을 느껴 이야기하지 않았다. 삼청동을 언제 와봤냐고 물어보니 30년 전이란다. 엄마는 이제는 밖에 잘 나가지도 않고, 나간다고 하여도 친척 집들에만 들러 왕래를 하고 있으니. 엄마는 그러니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는 것이야-라는 말로 에둘러 표현했지만- 그 에둘러진 말에 담긴 감정은 내가 보답해야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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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철 지난 이야기들은 하지 않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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