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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Ah Aug 09. 2022

그것들은 모두 도전이 아니라 도피였을까?

Dyspnea#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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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안경을 쓰지 않은 채로 우선 전자시계의 앞을 흐릿하게 봤다. 두 자릿수가 아닌 앞이 0. 일단 됐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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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나름의 루틴으로 계란밥을 먹는다. 거슬러 올라가면 학교 시험이 있을 때마다 그랬고, 그 나름의 전통은 수능, 이후 면접들에서도 이어졌다. 오늘 엄마한테 면접 보러 간다고 이야기는 따로 하지 않고 -면접 보고 떨어지면 그 소식을 전하는 게 힘들어서- 계란밥을 해달라고 이야기만 했는데 지금 보니 책상에 우황청심환이 놓여있네. 그것도 만 원짜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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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은 나를 도살장에 끌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의 행위다. 몇 번이고 나는 도살장에 끌려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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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떨리기 시작한다. 오늘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정리. 수익화 모델 1. 책 판매(독립출판물) 2. 남의집 모임 및 문토 활동을 오래 해왔다. 그런 모임들을 자주 열 것. 3. 망원동 북킹어바웃 모델 차용 (아운트, 순정책방, 무엇보다책방, 다독다독 등) 4. 근처에 있는 프린터스의 실크 스크린이나 레터 프레스 작업과 왓위원트의 북 바인딩 클래스와 연계하여 안에 콘텐츠를 만들겠다 5. 독립출판물 출간 클래스. 6. 단이 놓여있던데 그 단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활용해서 그 뒷공간을 스테이지 혹은 전시 공간으로 활용해 보면 어떨까. 7. 작가들과의 만남. 


사회적 가치? 1. 성내 도서관과 다독다독 같이 이미 기성 책들을 너무 잘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하지만 독립서점이 부재하다 보니 독립출판물을 접하기는 어려운 동네. 독립출판물은 다양성을 인지할 수 있다. 다양성을 자각하게 되었을 때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 10년 전쯤 둔촌주공 아파트를 기록한 이인규 님의 안녕, 둔촌주공 아파트가 재개발과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기록하며 관심을 끌었고, 비슷한 작업을 하셨던 캐논의 미래 작가 상을 받으신 류준열 작가님과도 같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올 수 있도록 성내동이나 강동의 이야기들을 아카이빙 하는 작업을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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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오늘 하루를 좀 정리해 보기로. 면접을 본 이후의 이야기부터 하면 되려나? 우선, 음. 음. 총 네 명이서 봤다. 경쟁률은 4:1. 펫 용품 하신다는 분 한 분, 식물 관련해서 하신다는 분 한 분, 타투 스티커? 쪽 공방 하신다는 분 한 분과 -서점을 한다는 나까지- 대략 한 분당 15분 정도의 시간이 면접 시간으로 쓰였는데- 어차피 다른 분들의 면접에선 어떤 질문이 나왔는지 모르니- 내 면접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 본다면 -술로 우 사장님께서 이야기해 주셨던 것처럼 수익화 모델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았다. 나는 위에서 정리했던 것처럼- 다양한 수익 출구를 만들겠다고 답했는데- 면접관 중 한 분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성내 도서관과 다독다독이라는 북 카페가 바로 옆에 있으니 독립출판물과 큐레이팅으로 승부를 내겠다고 이야기를 드렸는데- 안 그래도 사양산업이라 불리는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독립출판물을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냐는 이야기- 면접관의 입장에선 시작도 중요하지만 결국 지속 가능한 운영이 중요한데- 그게 과연 가능하겠냐는 이야기. 내가 준비해 간 수익화 모델을 모두 전면 부정하셨는데 그게 현실적이었을지도 모르겠고 응당 합리적인 질문들과 이야기였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뭐라고 말을 더 했어야 할지.. 내가 생각해갔던 게 부족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 서점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웬만한 서점에서 벌일 수 있는 이야기는 다 가지고 간 것 같은데-  다른 한 분은 이 일을 하겠다는 열정만큼은 느껴져서 좋다- 근데 창업을 준비한 기간이 너무 짧고..- 사업계획서가 부족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창업을 준비했다고 한 시간이 퇴사를 하고 난 이후라고 이야기해서 그런가? 그렇지만 난 서점을 하고 싶었던지는 이미 오래되었는데.. 사업 계획서에 대한 이야기는 이런 구조를 처음 써봤기 때문에 다소 미숙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이며, 그렇기 때문에 면접을 더욱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이야기를 드렸다. 하여.. 내 면접은.. 서점으로 이 동네에서 어떻게 사회적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도달도 하지 못해 준비해 간 이야기도 하지 못한 채 수익화 모델에 대한 이야기에서 가로막히며 끝이 났다- 사실 서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과.. 수익모델화를 언급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놓친 부분이 있으면 이야기 주라!- 그 모든 게 어불성설이라는 듯이, 그거 가지고 수익이 되겠냐고 말씀을 주셔서.. 뭐라고 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더라고.. 내가 준비가 미흡했던 걸까. 서점에서 이보다 더 어떻게 수익모델을 마련하고 준비하라는 것인지를 제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총알은 얼마나 있냐고 물어보셔서 현재 이 천정도 있다고 했는데- 음음. 서점은 돈을 좇지 않기 위해, 삶의 주도권을 스스로 쥐기 위하여 시작하는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서점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결국 돈이 필요하군요. 그럼 나는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요? 아. 그 질문도 있었네. 창업을 하기 위해 100이 필요하다면 몇 정도를 가지고 있냐고 생각하시냐고. 난 100 이상이라고 이야기를 했고 -결국 열정만큼은 높이 산다는 이야기만 들으며 면접은 끝이 났다. 뭐.. 창업과 관련하여 첫 면접이었고- 나도 정확히 무엇들을 준비해 가야 하는지 몰랐던 면접이라는 걸 생각하면 도전해 본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은 한다. 내가 준비해 갔던 이야기들도 모두 전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내 생각의 부족함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해서 -물론 이 부족함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에 대해선 또 다른 과제로 남았지만-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후회가 있진 않다. 그 이유는 어찌 첫 술에 배부르겠냐는 생각도 -물론 그것이 제일 좋기야 하겠지만..- 있지만, 내 나름의 시도를 해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어도 이 경험은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내가 가질 공간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시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 충분히 깊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설레기도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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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일지 9인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건 한 마디면 된다. 신분증 한 번만 확인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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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일지는 몇이더라. 커뮤니케이션 스킬로 편의점에서 가장 감동을 줄 수 있는 서비스는 과연 무엇일까? 그러니까- 현재 내가 손님들한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서비스는 봉투를 구매하시면, 그 봉투에 물건을 담아드리는 것인데- 감동을 줄 수 있는 서비스가 과연 무엇이 있을까? 편의점에 어느새 15번 정도 나왔는데 그래도 얼굴이 익숙해진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은 또 이게 뭐라고 꽤 반갑네. 근데 왜 자기 오빠는 매번 바뀌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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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는 글을 쓰기 위해 자기만의 방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의 내게 나만의 방은 이 편의점의 1평도 되지 않는 카운터 공간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곳에선 꾸역꾸역 매일 글을 쓰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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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내가 이렇게 된 것은 결국 끈기가 없어서였을까? 더 끈기 있게 출판사를 다니지 않아서. 더 끈기 있게 스튜디오를 다니지 않아서. 더 끈기 있게 공연장을 다니지 않아서. 더 끈기 있게 코리빙 커뮤니티 매니저로 하지 않고 모두 중도에 그만두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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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스스로 나름 많은 도전을 해오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모두 도전이 아니라 도피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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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서 면접을 보고 나와선 뭘 했냐-. 얼마 전 청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친구가 있어 집을 대신 봐준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했었는데- 그 친구가 오늘 하루 연차 쓰고 와서 집을 하루 종일 보러 다닌다고 해서 같이 보러 다녔다. 아 집 보는 거 정말 힘들대. 혼자 살 집을 구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결혼하면 둘이 살 집은 또 어떻게 구한대. 일단 우리는 송파/가락/강동/하남 정도, 원룸, 3천/50선, 주차 가능- 정도로 매물을 찾았는데 와.. 일단 매물이 정말 정말 없다. 그리고 좋은 매물은.. 정말 바로바로 나간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것 까진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던 매물도 거의 바로 나간다. 매물을 몇 군데 보러 갔는데 참.. 또 한 번 되게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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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졸리다.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그대로 잠들고 싶다. 



0509

갑자기 화가 나네. 서점이 수익화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이야기했는데도 서점 따위는 돈을 벌 수 없다고 못 박아버리다니. 난 왜 거기서 더 화를 내지 못한 거지? 왜 더 자신 있게 이야기하지 못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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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래도 내가 나름 꽤나 장점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 장점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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