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Verve Coffee Roasters
LA에서만 이 카페를 두 번 방문했다. 한 번은 아침 일찍 혼자 차를 끌고 커피를 마시러 다녀왔고, 그 다음에는 팀원과 함께 가서 커피와 디저트를 맛보고 원두도 사고, 인터뷰까지 했다. 그것 자체는 매우 순조로웠다. 다만 이번에도 역시나 주차가 문제였다. 이 카페는 LA 중심가 쪽 타운에 있었고, 우리 숙소는 한인타운 쪽이었다. 꽤나 거리가 멀어서 반드시 차를 가지고 이동해야만 했다. 하지만, 도착한 후에 주차를 하려고 보니 카페와 가까운 주차장 중에서 가장 싼 곳이 30분에 6달러였다... 사실상 한 잔에 5달러도 하지 않는 커피 한 잔을 위해서 주차비만 최소 6달러를 지불해야만 했다. 이후로도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뉴욕 모든 곳에서 주차비와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벌브 커피 로스터스(Verve Coffee Roasters, 이하 벌브)는 미국으로 정했을 때부터 염두에 두었던 브랜드이다. 벌브는 앞서 나온 인텔리젠시아 같은 대형 브랜드에 비해서는 신생 브랜드이지만, '커피에 미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별명으로 미국 커피 시장에서 빠르게 자리를 넓혀가는 중이다. 2007년에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에 첫 매장을 오픈했으며, 2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은 미국과 일본을 통틀어 총 13개의 카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원두 패키지 디자인이나 종이컵 등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친환경적인 시도를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뷰를 꼭 해보고 싶었다(사실은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가보고 싶었다).
대학 동기였던 콜비(Colby Barr)와 라이언(Ryan O'Donovan)이 함께 시작했다. 콜비는 대학을 한창 다니던 시절에 커피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 당시, 'Coffee crazy geek friend'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커피에 미쳐있었던 라이언이 있었기에 매장을 오픈해보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연히 산타크루즈에 카페 자리가 난 것을 보고 둘이서 Verve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했던 것이다. 그저 커피 자체에 미쳐있었던 라이언과 다르게, 어린 시절부터 와인용 포도와 배를 재배하던 가정에서 자란 콜비는 농부들과 농산물, 그리고 소비자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익숙했다. 그래서인지 콜비는 일찍부터 산지로 가서 농부들과 직접 마주하고 싶어 했다.
이것이 바로 벌브를 빠르게 성장시킨 원동력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농부와의 직접적인 소통과 거래를 통해서 탄탄하게 관계를 쌓아나가면서 좋은 커피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관계를 조금 더 투명하게 유지하고 알리기 위해서 'Farmlevel'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농부들이 산지에서 커피를 재배하고 가공하는 과정부터, 그 커피가 최종적으로 로스터와 바리스타를 통해 소비자들이 커피를 마실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소개하는 프로젝트이다. 그리고, 벌브를 빠르게 성장시킨 또 하나의 중요한 원동력은 바로 '사람'이다. 사실 처음에 이것 때문에 이 브랜드에 매우 많은 관심을 가졌다.
한 팟캐스트의 인터뷰에서 콜비는 자신이 직원을 뽑고 관리하는 기준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우리는 고용하는 일에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인 만큼 일에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려고 노력해요. 그들에게 알맞은 도구를 제공하고, 그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합니다. 하지만,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들 스스로가 생각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요. 우리가 교육을 하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일을 하면서 올바른 지식과 기술로 편안하게 일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당신은 그냥 당신이 되어야 해요.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이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에서 다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 멋있는 말이다. 그의 말대로 그 모든 것들이 이 LA 매장에서도 드러났다. 바리스타들은 웃으면서 손님들을 응대하였고, 나의 커피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과 프로젝트에 필요한 인터뷰 질문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그리고 자신감 있게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다.
질소 커피의 원조
한 번쯤은 질소 커피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스타벅스, 엔제리너스, 투썸플레이스, 이디야 등에서 나이트로 콜드 브루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콜드 브루나 더치에 대해서는 앞선 글에서 설명해두었다: https://brunch.co.kr/@manall/7). 원리는 간단하다. 추출된 콜드 브루에 질소를 주입해서 풍부하고 부드러운 거품이 올라가 있는 기네스 흑맥주와 같은 형태로 한 잔이 제공되는 것이다. 질소는 무색, 무미, 무취의 흔한 가스인데, 커피 내의 산소를 제거하고 질소가 그 자리를 채워주면 두 가지 장점이 생긴다.
첫 번째, 이제 막 브루잉된 커피의 향과 맛을 더 오랜 시간 동안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다.
두 번째, 질소가 만들어내는 미세 거품이 커피를 훨씬 더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마셔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커피 위에 있는 거품은 맥주 거품처럼 부드럽고, 아래에 깔려 있는 커피 자체도 일반적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 훨씬 부드럽게 느껴진다. 질소 가스는 탄산과 다르게 액체에 잘 녹지 않아서, 매우 작은 기포가 오랜 시간 동안 커피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창의적인 음료이지 않은가? 그런 음료의 원조가 바로 벌브이다. 앞에서 벌브가 '커피에 미친 사람들'이라는 별명을 가진 브랜드라고 이야기했던가? 콜비와 함께 벌브를 창업한 라이언은 이렇게 커피를 경험하는 수많은 혁신적인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위 사진의 오른쪽에 보이는 음료가 벌브의 Nitro Flash Brew(질소 커피)이다. 그런데, 이 커피는 위에서 설명한 나이트로 콜드 브루와는 조금 다르게 만들어진다. 벌브의 질소 커피는 콜드 브루로 만들지 않는다. 무산소 환경에서 뜨겁게 우려낸 싱글 오리진 커피를 순간적으로 차갑게 만든 다음 질소를 주입해서 남아 있는 산소를 제거해서 만든다. 이렇게 하면, 모든 콜드 브루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느낌에서 벗어나, 싱글 오리진 커피가 가지고 있는 각각의 특성까지 잘 보존할 수 있다.
훌륭한 커피와 디저트를 좋은 날씨에 이쁜 자리에서 만끽하다 보니 시간이 점점 흘러가고 있었다. 함께 온 팀원과 분위기에 한껏 들떠서 커피 이야기도 하고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며 점점 첫 인터뷰에 대한 자신감이 충전되었다.
"안녕하세요, 커피가 정말 맛있네요. 미국에 올 때부터 이곳을 꼭 와보고 싶었는데 기분이 너무 좋네요."
"고마워요! 어디에서 왔나요?"
"저희는 한국에서 왔어요. 사실은, 그냥 놀러 온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때문에 왔어요. 커피에 관련된 것인데, 혹시 몇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그럼요! 얼마든지요. 그중에 우리를 선택해주었다니, 영광이네요"
"혹시 여기에서는 커피 찌꺼기를 처리하는 방법이 따로 있나요? 우리는 카페에서 나오는 커피 찌꺼기를 이용해서 친환경 잉크를 만드는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어요."
"음, 우리는 따로 처리하는 방법은 없어요. 그냥 버리기만 하죠. 생각해보니,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네요!"
이런 흐름으로 인터뷰와 함께 간단한 설문조사를 하고, 커피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나누었다. 바쁜 와중에도 너무나 친절하게 답해준 바리스타에게 고마웠다. 인터뷰를 마친 후에 한국에서 가져온 간단한 선물을 건넸다. 나는 늘 외국으로 여행을 갈 때마다 작은 선물을 조금씩 가져가는데, 이번에도 잊지 않고 가져왔다가 고마운 마음에 건넨 것이다. 웬걸, 그 바리스타가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아하면서 동료들에게 자랑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나가는 길에 우리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이거 들고 가서 마셔보세요"
그는 새로 나온 것이라며 '드립 키트'를 나누어주었다. 이 안에는 한 잔 분량의 분쇄된 커피와 일회용 종이 필터가 같이 들어있는데, 여행지나 야외에서도 좋은 커피를 만들어먹기 좋단다. 예상하지 못한 따뜻한 마음에 뭉클함이 밀려온다.
성공적인 인터뷰,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선물과 좋은 기억을 가득 안고, 언제든 다음에 다시 꼭 볼 것처럼 인사를 하며 카페를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