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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느끼는 두려움

by 매너티연


일본을 다녀왔다.


쓰레기 하나 용납하지 않는 길거리가 지나온 거리를 뒤돌아보게 한다.

혹시나 몸에서 쓰레기 하나 떨어지지 않았는지 조심스럽다.


세대도 달라져 몇 년 전 일본과는 조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친절함은 여전하다.


나에겐 이런 친절함과 과한 청결이 숨 막힌다.

친절하고, 청결한데 왜 숨이 막히는 걸까




일본에서 느끼는 친절과 청결 속엔 두려움이 묻어나있다. 이 두려움은 친절과 청결을 통해 미움받지 않으려는 움직임이다. 미움받지 않는 것은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가능성, 버림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의지할 구석 마련해 놓는 것..


그런 두려움이 왜 생겨났을까?


지진이나, 해일 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잦은 일본인들에게 죽음은 늘 가까이 있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 그렇기에 더욱 안전한 지대에 근간을 두고 싶었을 것이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 그 기회를 꾀하였다. 식민 지배를 통해 안전한 곳에 뿌리를 두려는 본능이 작용했다. 하지만 그 기회는 수포로 돌아갔고 전범국이라는 낙인과 여러 나라에 상처가 되어 버림받는 두려움을 가속화하였다. 불안한 땅에 핵폭탄이 떨어지고 일본의 권력층이 뿌린 두려움은 일본 국민들을 더욱 두려움의 늪에 헤어 나올 수 없게 했다.


수천 년 동안 대륙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서러움, 수 없는 민족 간 전쟁, 침탈, 언젠가 이 땅에서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여전히 꿈틀대고 있다. 대륙에 사는 인간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단 대륙과 동떨어진 섬나라 특히나 자연재해가 자주 일어나는 일본에겐 더 큰 것일 것이다.


반면 한국인이 가진 두려움은 무시당하지 않는 것, 통제당하지 않는 두려움에 기반해 있다.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외세의 침략과 통제에 굴복당해야만 했던 두려움 때문에 기를 쓰고 정상을 향하려는 움직임은 현재 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


역사를 공부하면 너무나 미운 일본이지만, 일본에 사는 한 명, 한 명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자연재해에 불안해하며 살아가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우린 도대체 누굴 미워해야 하는 것인가



__매너티 연



사진: Unsplash의 Andre Be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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