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간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간, 공허감
공허하다.
무엇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
가슴이 끓어오르듯 열정으로 임해오던 일도 망각한다.
계획도 목표도 명분을 잃었다.
생존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모든 것을 망각하는 시간이다.
마치 블랙홀 안에 갇힌 것처럼 열정도 욕심도 없다.
텅 빈 공간에 무언가로 채워야 할 것만 같아서
타인의 온기로, 음식으로, 물건으로 가득 채우고, 일을 통해 기억을 잠시 잊는다.
이런 저항에 보란 듯이 공허감은 더욱 거세진다.
결국, 걷잡을 수 없이 넓어진 공간에 홀로 남게 된다.
외롭고 채울 수 없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한다.
그 방법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찾을 수 없다.
이 알 수 없는 공허감의 원인을.
무엇이 문제일까.
내 마음속 불신이 만들어낸 거리감으로 인한 공허인가?
꿈같은 희망을 구겨 넣고 아득한 미래와 나를 외면했을 때
인간이 지닌 생존욕이 이상을 짓밟을 때
자아실현보단 생존, 인정욕구가 눈앞을 가릴 때
공허한 마음이 생겼다.
‘이런 걸 한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있나?’
‘이렇게 천천히 하면 남들에게 뒤처지고 인정도 못 받아’
‘하고 싶은 공부? 시간과 돈이 너무 많이 들어 포기해야 해’
‘그걸 해서 뭐 해? 그걸 할 돈이 있나? 이걸 해서 잘 된다는 보장이라도 있나?’
‘내 실력으로 이게 잘 될 거라고 생각해? 헛된 꿈이야’
마음속에 인간이 지닌 생존 자아가 내면 속 희망을 꿈꾸는 자아에게
희망을 접으라고 할 때마다 두 자아 사이의 거리감이 생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나에게 생존을 가르쳤지만 마음속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라 한 적은 없다.
생존을 위해 진짜 자아는 나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생존이라는 명분 때문에 나를 위로하지 못했고, 믿지 못했고, 나약함을 혐오했기 때문에
진짜 나는 내 안에서 실재할 수 없었다.
나로서 살지 못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몰랐다.
희망을 꿈꿀 수도 원하는 것을 이룰 수도 없었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넓혀진 공간 틈으로 들어온 찬 바람에 뼈가 시리다.
지금도 이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쓸모도 없는 물건을 무작위로 구입해 공간을 채우고,
평생 이어지지도 않을 사람들과 친해져 정신적 공간과 물리적 공간을 채우고,
비어있는 마음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음식으로 메운다.
본질을 외치는 목소리는 희미해지고
실재하는 나와 생존을 위한 나 사이는 더 멀어진다.
그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그것이 공허감이다.
__매너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