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중독자

도파민이 과잉 분비된 자의 삶

by 매너티연
도파민이 과잉 분비된 자의 삶


어린 시절에 치킨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BBQ 올리브 치킨을 좋아했어요. 지금은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만원의 가격으로 주말마다 다섯 식구가 한 마리의 치킨을 가지고 화목하게 나눠 먹었죠. 어리니 한 마리도 충분했지만 어른들은 충분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5명에 치킨 한 마리는 너무 작은 데 말이죠. 기름진 맛과 특히 닭다리 살과 염지의 짭짤한 맛은 뇌를 자극했습니다. 그 맛은 성인이 되어 중독될 때까지 잊지 못했습니다. 음식에 욕심이 강한 아이는 '나중에 돈 벌면 치킨을 엄청나게 시켜서 나 혼자 다 먹을 테다'라는 꿈을 간직했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아이는 월급날이면 자취방에서 노트북을 켜고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영상을 보며 닭다리만 있는 치킨을 사서 쾌락을 맛봅니다. 꿈을 이룬 것이죠.


단편적으로만 보면 행복한 삶입니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서 재밌는 것을 보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삶. 근데 제 삶에선 진정으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들이 없었습니다. 치킨은 비참한 인생을 겨우 이어나가도록 도와주는 단비 같은 존재였지만 진정한 행복은 줄 수 없었습니다. 치킨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는 기름덩어리에 담근 닭고기에 불과했고 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어 주진 못했죠. 치킨은 도파민 디톡스에서 가장 물리치기 힘든 요소가 됩니다.


이렇게 성인이 되어 치킨 중독으로까지 이어진 이유는 사회생활의 부침이었습니다. 그 당시엔 사람들이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실력이 형편없다고 스스로를 비관하였죠. 그래도 어떡하겠습니까? 죽도록 열심히 했습니다. 보란 듯이 이 단체에서 최고로 우수한 사원이 되겠다고 말이죠. 그러나 돌아오는 건 사무실에서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폭언이었습니다. 우울증은 극에 달했습니다. 불안장애가 왔다는 것을 알았고,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그랬어요. 만약 늦게 왔다면 더 큰 정신 질환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퇴사 후 번 돈으로 3개월 정도 쉬었지만 그 이상 쉴 수 없었습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조급해져 쉰 지 얼마 되지 않아 3개월 후 정신과 약을 먹으며 다른 회사를 전전했습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소진되어 버려 더 이상 이 몸뚱이를 가지고 돈을 버는 일이 불가능 해졌습니다. 뇌는 이미 나 자신에게 너무 지쳐버려서 머리 쓰는 일을 하는 것을 버거워했습니다. 버거워한다는 의미는 뇌가 너무 힘들어하면 눈물을 흘러내리게 했습니다. 저는 일을 하다가도 어이가 없었죠. 이렇게 쉽게 눈물을 흘리는 내 모습이 바보 같았고 짜증 났습니다. 자기혐오도 더불어 극에 달했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내 몸과 마음은 내 뜻대로 나의 에고대로 따라주지 않았어요. 여전히 건재해야 하는데, 1등 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줘야 하는데 라는 욕심을 이뤄주려고 하지 않았어요. 뭔가를 시도할 때마다 일이 어그러지고 계획이 엎질러지고 마치 ‘너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난 못 도와줘’라고 말하는 듯했어요.


2년간 번 돈과 부모님이 가끔 걱정되면 주시는 용돈으로 쉬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대로 투자하려 했어요. 학원이나 배울 수 있는 곳에 말이죠. 그렇게 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경제적인 부분을 되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죽고 싶게도 돈은 떨어져 가는데 아이디어나 하고 싶은 건 생각나지 않아요.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경력단절의 시간은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3개월 정도 쉬었다고 해도 내 삶이 더 나아지지도 않았어요. 여전히 월급날이 없어도 월급날처럼 치킨을 시켜 먹고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 움직 일일 없으니 누워있어 살이 쪘어요.


도파민 중독은 슬픔과 외면으로부터 온다

살이 찌니 사람들이 무시했어요. 과거에 찍었던 증명사진을 보고 ‘왜 이렇게 달라요?’ 라거나 예쁜 옷가게를 가면 ‘손님 사이즈는 없어요.’하며 입구 앞에서 대놓고 문전박대를 했어요. 살찐 사람들에게 한국인들은 너무 무례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피폐해졌는데 사람들은 하나도 따뜻하지 않았어요. 날카로운 사회로 나가기가 더욱 싫어졌습니다.


내 삶을 외면하기 시작했어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하기는커녕 타인의 삶에 더 집중했어요. 연예인들이 누가 사귀고 누가 헤어지고, 정치 이슈에 대한 글을 보면서 내 비참한 삶보다 낫다고 자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내 진정한 삶과는 멀어지는 삶이 시작됐어요.


점성술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점성술로 운명을 점칠 줄은 모르지만 내 상승궁이 한 달 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군가 예언한 글을 읽고 좋으면 삼키고 나쁘면 뱉고를 반복했습니다. 지금은 희망도 없지만 미래는 좋았으면 했거든요.


과거를 무던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참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내 삶이 왜 이리 막막하고 비참한 것 같은지 왜 다른 사람보다 내 삶만 이렇게 밑바닥을 치는지 원망스러웠습니다. 부모를 원망했다가 내 주변인들을 원망했다가 심지어 만난 지 약 2년밖에 안된 남자친구까지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진짜 비참한 건 내가 내 삶을 비참하다고 여기기 시작한 뒤부터입니다.


새벽에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습니다. 불안장애가 있던 나를 위해 남자친구는 짐을 들고 와 같이 살아주었습니다. 동거 시작 후 함께 있게 되니 밤에 잠을 못 자거나 불안으로 인해 두려움에 떠는 일은 줄었습니다. 문제점은, 나의 이런 게으르고 한심한 모습을 보여주기가 싫었다는 겁니다. 낮에 먹은 커피가 문제여서, 일자리 알아보겠다며, 30분만 있다가 잔다며 정시각에 잠자기를 미뤘습니다. 그러곤 몰래 치킨을 시켜 먹기도 했습니다. 남자친구는 나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부족했는지 그 시간에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치킨을 시킵니다.


그런 식의 삶에 더해서 낮에는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누웠다가 인스타, 유튜브 등의 숏츠를 몇 번 보다 보면 2시간이 금방 흘러있습니다. 그러곤 내 삶에 대한 회의감과 불안감이 들어 정신을 순간 차리지만 답 없는 인생을 외면하기 위해 다시 숏츠를 봅니다. 숏츠를 보다가 졸리면 소화가 되지 않은 채로 낮잠을 청합니다.


도파민 중독, 악순환의 반복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을 알기 전까지 소위 쓰레기처럼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됩니다. 하지만 고칠 수 없습니다. 나를 이끌어주고 잡아주는 게 없고 정신적으로 아프고 무기력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잠시 이렇게 살아도 되지 않나? 라며 위안합니다. 이런 생각으로 인해 악순환의 반복은 2~3년 정도 걸렸습니다. 매일의 삶이 이렇진 않았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 반복되는 이런 패턴이 습관으로 뿌리내렸습니다. 또한 사회에 발을 내딛는 것을 더디게 했죠. 매일 밤 잠을 자지 않고 내 미래가 캄캄하고 어둡다는 생각에 눈물 흘리는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 매너티연


사진: Unsplash의 Adrian Swanc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