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의 본질과 상처 치유의 시작
중독의 본질과 상처 치유의 시작
23년 12월 곧 새해가 됐을 때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연말에 상을 받고 한 해를 고생했다며 인센티브를 지급받기도 하고 연말 파티로 사람들과 다가오는 해를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21년도에 퇴사하여 22~23년 약 2년 반을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외로운 연말을 보내게 되니 이제는 실감이 납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어떤 특별한 능력도 갖추지 못한 흔히 말하는 사회에 동떨어진 '실패자'가 되는 게 아닐까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조급해졌습니다. 다시 두발 딛고 일어나 사람들 사이에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뚝 솟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은 스스로 제일 잘 알기에 새해가 되었다고 큰 목표를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도 조급함으로 인해 큰 목표를 가지고 임하다 보니 금방 넘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조급해질수록 몸은 말을 들어주지 않았던 과거를 되살펴보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봅니다. '그래 차근차근해보자. 근데 일단 작은 계획으로 시작해 보자.'라고 다짐합니다. 이런 작은 계획들로 시작하면 내 인생이 한걸음 더 나아지겠지라며 스스로를 다독거립니다. 그래서 나에게 작은 숙제를 하나 내주기로 합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그냥 평범한 일상 속에서 주로 하는 일들을 아이폰 기본 어플인 메모 앱에서 체크리스트 기능으로 해야 할 일을 적고, 동그라미를 클릭하면 완료되었다는 표시로 체크됩니다. 사진과 같이 아주 간단한 일들을 체크해 가며 해야 할 일들을 소거해 나가는 일이 작게나마 보람을 일으킵니다.
매일 체크리스트를 완료하다 보니 점점 목표와 계획이 진화하고 다양한 숙제를 내주게 되었습니다. 체크리스트와 숙제는 작은 단위로 세분화합니다. 장을 보는 데에서도 장보기로만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 사야 하는 것들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체크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장보기가 아니라 고추사기, 마늘사기, 양파사기 이런 식으로 세분화하는 것입니다. 또는 공부를 해야 한다면 단순히 공부하기라는 애매하고 큰 목표보다는 '영어 한 문장', '포토샵 강의 5분짜리 강의 듣기'와 같이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갭니다. 그러면 부담스럽지도 않고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생깁니다. 그리고 해내면 많은 것들을 이룬 셈이기 때문에 성취감 또한 배로 느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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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목표를 아주 작은 미세한 단위로 설정하면 부담스럽지도 않고 체크 리스트를 체크해 나가면서 뿌듯함과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꾸준히 두 달 정도 하였습니다. 꾸준히 하루의 삶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삶을 살게 되니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더 진보된 계획도 주게 되었습니다. 이런 삶을 시작하니 읽기 싫던 책들도 읽게 되었습니다. 자기 계발서를 읽지 않았었는데 이 패턴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계발서에 심취하게 되었고 다양한 분야의 자기 계발서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특히 치킨 중독이 심했고 더불어 정신적 무기력증이 심했기 때문에 뇌와 관련해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원인을 밝히려 책을 읽었습니다. 특히 회복탄력성에 관련한 책과 우뇌와 좌뇌 관련한 뇌과학 책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자기 계발서는 삶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기쁨도 잠시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사라지고 다시 무기력에 빠졌습니다.
두 달 정도 됐을 즈음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면서 다시 돈을 벌어 볼까?'라는 생각과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로 알바몬을 통해 카페 알바에 지원해 보았습니다. 사회생활을 한지 오래됐으니 작은 것부터 시작해 안전한 둥지를 벗어나자라는 마음으로 아르바이트에 면접을 보았습니다. 면접은 당일에 바로 합격했습니다. 업무 내용은 시급 9500원에 3시간 동안 커피 만들기, 주방장의 보조업무, 서빙, 캐셔 업무였습니다. 일의 난이도도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치 용돈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죠.
한 한 달 정도 일했을까요? 기쁘게 일하면서 살아가는 생활도 잠시 역시나 사람과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장님은 아르바이트생을 돈을 주면 마음껏 부려도 되는 사람 취급을 했습니다. 그저 그 사장님께서는 아르바이트생은 어떤 말을 해도 그냥 받아줘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인격적으로 대우받으며 일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환경이었죠. 3시간 안에 시킬 수 있는 일은 완전히 뽕을 뽑으려는 느낌이 들었지만 사장님 입장으로서 생각하면 아르바이트생에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내 가게처럼 열심히 했죠. 사회로부터 상처받았던 과거와 달리 ‘과거완 달라 지금은 강해져서 이런 것엔 이제 끄떡도 없어’라고 생각한 제가 오만했던 걸까요? 그런 사장님의 태도를 계속 받아주니 사람 간 넘어야 할 선을 넘더군요. 그 일이 있은 후 가게에 출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던 때와 달리 이제는 이러한 부당함을 견딜 수 없는 성격으로 변했더군요.
그만두고 한 달 동안은 다시 무기력해졌습니다. 아니 한 달을 기점으로 열심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아예 접었습니다. '나약한 사람', '사회 부적응자'라며 자책했습니다. 작은 상처에 너무 예민한가 싶다가도 그래도 거기 있었으면 어쨌든 그만뒀을 거야 라며 위로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살기 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열심히 살려하면 자꾸 넘어지고 잘 되지도 않고 하고 싶은 건 없고 다시 불안해졌습니다. 남편이 돈을 벌지 않는 나를 버거워할까 봐 불안해졌습니다. 다시 무기력해져 가고 사회생활에 도전하는 것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니 가족 등 주변사람들에게 날카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자책과 우울 속에서 무기력하게 보낸 지 5개월이 흘렀습니다. 강인한 생명의 계절인 여름이 되면 다시 살아날 줄 알았지만 무기력은 여전합니다. 근데 죽으란 법은 없다고 했던가요. 누군가가 나를 간접적으로 일으키려 합니다. 여름 바캉스를 즐기기 위해 살을 뺀다는 문자를 봤을 때였습니다. 그때 내 안에서 강렬한 무엇인가가 움직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뭐지? 난 뭘 하고 싶지? 그냥 누워만 있고 싶은 건가? 나도 에메랄드 빛 해변가에서 예쁜 몸매로 비키니 입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태닝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20대 후반이 되었지만 20대 시절에 한 번도 비키니를 입어보지 못했던 사실과 20대의 80퍼센트를 무기력과 우울에 메여 살면서 진정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제야 내 문제는 무엇일까…. 어떤 것이 너를 그렇게 불안하게 만들었고 슬프고 우울하게 만들었는지 그에 대한 원인을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우울함은 잘 살아보겠다 노력한 결과
내 불안장애의 근원은 무엇일까? 내 무기력의 근원은 어디서 왔을까?
나 자신에게 이 질문을 하기 전까진 사람과의 문제로 회사를 그만둬야 했던 그 과거의 상처가 회복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누군가 혹은 시간이 상처를 치료해 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죠. 이제 외면했던 이 아픔을 비키니를 입고 싶다는 열망 하나만으로 다시 돌아봐주기 시작합니다.
2024년 연초에 시작했던 todolist와 독서를 다시 시작합니다. 그때보다 더 많은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나에 대한 궁금증이 이 시기에 폭발했던 것이지요. 책을 읽고 좋은 내용이 있으면 노트하면서 읽기도 하고 일기도 자주 쓰게 되었습니다. 어떨 때 힘들고, 어떨 때 불안한지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늘수록 브레인 포그 증상이 사라지고 서서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보였습니다. 그전까지 큰 목표가 없으니 아침에 일어나도 밥을 먹고 다시 잡니다. 왜냐하면 일어나서 할 게 없고, 하고 싶은 게 없으니까요. 그러나 todolist를 하고 일기를 쓰며 나에게 집중하니 하고 싶은 것들이 폭죽 터지듯 어느 순간 번뜩입니다. 하고 싶은 게 생기다 보니 해야 할 것들 산더미입니다.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책을 써야 한다는 목표가 생기니 밤에 잠들기가 힘듭니다. 내일 쓸 분량들이 생각나 기대가 돼서 미칠 지경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책 쓰기에 몰입합니다.
딱히 우울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은데 무기력한 이유는 목표의 부재입니다.
매일을 살아낼 수 있는 목표보다는 더 큰 목표가 있어야 살아가는데 큰 동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해야 하는 일들을 세부적으로 해내는 일은 작은 만족감, 자기 효능감과 자신감 1%씩 주지만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동력을 주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내일이 기대가 되지 않기 때문에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뤄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만약,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내일로 미룰 수 없습니다. 내일 해야 할 일도 산더미 이기 때문이죠.
이러한 의문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게 큰 기여를 합니다. 작은 루틴으로부터 시작했던 일이 경험이 되고 자산이 되어 책을 써볼까?라는 꿈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아팠던 과거가 어떤 문제였는지 알았으니 부족하지만 여태까지 정리한 내용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무료 출판 플랫폼을 이용하여 출판에 도전합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발간한 책이니만큼 스스로에게 값어치가 있습니다. 물론 책이 많이 팔리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첫 작품이니 자랑스럽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나 자신이 도전하고 행하는 과정 속에서 어떤 것에 만족하고 어떤 것에 기뻐야 해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과정 속 기쁨을 알게 되었죠. 나만의 책을 출간을 기점으로 더 잘살아보고 싶다는 욕망의 마그마가 샘솟습니다.
23년 12월과는 다른 24년 12월 작심삼일이 아니라 더 큰 꿈을 꾸기 위해서 밑거름 작업을 준비하기 위한 막을 시작합니다.
—매너티연
사진: Unsplash의 Andrew Ne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