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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망친건 치킨이 아니었다

by 매너티연


치킨은 생닭을 정제된 탄수화물을 묻혀 기름에 튀겨 만든 음식이다.

정제당을 기름에 튀기면 인간의 혈당을 더욱 쉽게 올리는 물질로 변화한다고 한다.


결국 치킨을 먹고 급격히 올라간 혈당 때문에 섭취직후 졸리거나 무기력해진다.

뱃살이 접히지 않을 정도가 되면 내장지방은 이미 상한선을 넘었다.

콜레스테롤 수치는 재보지 않았다. 혈당 수치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나 스스로가 나에게 당뇨병을 선고했다.


그렇게 치명적인 치킨 오늘도 시켰다.



역설적이게도 치킨은 내 인생을 서서히 움직이게 했다.


치킨을 시킨다는 생각은 먹지도 않았지만 금세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보상회로가 돌아가면 무기력한 나를 일으켜 세웠다.

분비된 도파민은 기분을 고양시키고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치킨을 먹고 난 다음에 어떤 것을 할지 계획을 세우게 한다.


‘치킨 먹고 나면 공부해야지’


그 부푼 계획 따윈 믿지 않을 정도로 치킨을 시킨 다음에 이런 생각은 루틴이 되었다.

그래서 치킨을 시키고 먹는 이 상황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근데 치킨이 나를 움직이게 할 때에는 도파민에 절여진 상황을 마무리해야 할 때 비로소 발휘된다.


먼저 치킨을 다 먹은 후엔 열렬히 발골한 뼈가 남게 되는데,

주변에 흩뿌려진 튀김 부스러기와 함께 치워야 한다.

또한 함께 온 비워진 치킨 무 통과 콜라 캔을 분리수거해야 한다.


치킨을 시킴으로써 딸려온 쓰레기들만 버리는 게 아니다.

쓰레기들을 치우려면 이전에 쌓아놓은 재활용품들도 함께 치워야 한다.

바닥에 떨어진 치킨 부스러기 또한 이전에 쌓인 먼지들과 함께 닦아 내야 한다.


이렇게 먹은 것들을 치우다 보면 어느새 비우지 못했던 다른 것들도 비워버려 다시 새것이 되어있다.

치킨은 역설적이게도 내 몸을 망치면서 다시 일어설 힘을 주었다.

치킨은 나를 망쳤지만 그럼에도 살아갈 힘을 주었다.


진정으로 나를 죽여가는 것은 당뇨병도 고혈압도 아니었다.

‘치킨이 나를 망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망쳐가고 있다’

라고 믿었던 내가 나를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죽였다.


치킨은 몸에 좋지 않은 수천 가지, 아니 수백만 가지 중 한 가지 일뿐이다.

치킨을 먹었다는 죄책감에 그날을 실패자로 만든 그 하루가 쌓여서 수 십일, 수천일이 되었다.

중첩되어 쌓인 실패로 가득한 하루가 오늘날의 실패자를 만들었을 뿐이다.

치킨은 그저 너의 생각이 얼마나 편협하고 절망적이고 비참한지 수십 번 확인시켜 주었다.


나를 망쳤던 건 한 달 전에 먹은 치킨도, 어제 먹은 치킨도 아니다.

아주 작은 파괴적인 생각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졌음에 스스로 하루하루를 망쳤던 것이다.


나쁘다고 정의하는 것들에는 삶을 재정의하게 해주는 면에서

‘아주 나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없음을 치킨이 내게 알려주었다.


__매너티연


사진: Unsplash의 Joshua A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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