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자아 그리고 망치는 자아, 에고
나를 지키는 자아 그리고 망치는 자아, 에고
이 글은 아주 아주 깊은 곳에 나를 내 삶을 좌지우지했던 또 다른 자아의 이야기이다. 인생을 살면서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분노나, 열등감에 사로잡히거나 질투심이 올라올 때가 있었다. 일기를 써도 감정에 대한 책을 읽어봐도 근원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 감정의 근원은 가장 가까이 있음을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었다.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경험을 겪는 순간, ‘아차 내가 필요할 때다!’라며 나의 경험과 조언을 상대방은 묻지도 않았는데 '내 경험이 너에게 답을 줄 것이다'라며 오만한 마음에 쓸데없는 말을 우수수 내뱉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 사람만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었고, 심지어 생각했던 것과 달리 잘 진행되고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그 모습에 내심 화가 났다.
이내 그 사람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을 해결하고 성공하는데 다른 사람의 조언과는 다른 방식으로 잘 해내는 것을 보고 무시당했다는 분노에서 이내 질투심으로 전환되었다. 오히려 무시당했다는 분노에서 이른 질투심이 더욱 거세었다. 이성적으로 상대방은 원치 않았지만 내가 조언을 했고, 하지만 그 조언을 흘려 넘겨도 되는 조건에 위치해 있음에도 이런 감정이 떠오른 나 자신에 심히 역겨웠다.
그 역겨운 내 모습 안에선 불쌍하고 약한 아이의 존재를 느꼈다. 이 아이의 본질은 통제당해야만 했던 상황 속에서 자유의지를 상실하고 환경에 순응해야만 했던 우울 가득한 아이인데, 그러한 통제와 억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옷을 여러 겹 껴입는 것처럼 또 다른 자아들로 이 아이를 감쌌다. 겹겹이 감싸놓으니 그 자아가 변종 바이러스 마냥 과한 자존심을 드러내며 이상한 증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 아이의 껍데기로부터 삶이 괴롭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입학 이후이다. 이상하게 강한 자존심에 친구관계가 늘 괴로웠다. 또래 친구들이 나에게 조금만 무시하는 듯한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 나의 자존심을 짓눌러 내 존재마저 억압하는 느낌이 들어 괴로웠고, 장난인걸 알아도 두려움을 느꼈다. 혹시라도 이 사람이 나를 얕잡아보고 통제하려 들면 어쩌지?라는 극단적인 결론으로 도달했기 때문이다. 또한 같이 다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무시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같이 다니는 게 두려웠다. 나까지 무시당할까 봐 말이다. 중학교 때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는 애들이 타인을 괴롭힐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를 자책했지만 ‘대항하면 왕따를 당할 거야’라며 굴복해야만 하는 무기력감을 항상 지닌 채로 학교에 다녔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런 현실들로부터 아이를 지키기 위해 하루는 약해 보이면 통제당할 수 있으니까 강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을 다음 날은 그것만으론 부족하니까 외적으로 강해 보이도록 거칠게 행동하고, 다다음 날은 그것만으론 본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없어 사회적으로 우월해 보이는 장치에 집착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학력이나 학위 말이다. 이런 나날들이 늘어나니 결국엔 쓸데없는 것 마저 내세우려 하고 쉽게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 항상 사람들이 나를 무시한다 느꼈다. 이는 '나'라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하고, 타인이 보는 나의 이미지는 늘 내가 꿈꾸는 이상향이어야 한다는 집착으로 껍데기의 본질이 변질되었다.
매 순간, 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각각 다른 색의 옷을 입어왔고 삶을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두껍고 무거워져 왔다. 결국 이 껍데기는 ‘나’라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어야 하고, 사람들이 나를 존중하고 존경해야 해'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부추겼다. 껍데기는 나를 보호하기 위한 본질을 잊고 '나'라는 사람을 과대포장 하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하도록 만들고 빈 깡통이 요란하다는 말을 실감케 해주는 행동들을 했다. 실속도 요령도 없지만 있는 체를 하게 했고, 드러낼 재산 같은 것도 없지만 마치 무언가 있는 체를 하게 했다.
껍데기는 현재도 천천히 벗기고 있다. 한 꺼풀씩 벗겨내 가면서 어떤 가짜 옷을 입어왔는지 깨달아가고 있다.
이 껍데기는 곧 에고(ego)이고, 에고는 우리의 행동에 진정한 본질을 잊게 한다.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보단 상처를 숨기고 타인이 건들지 못하게 잠시 상처를 숨겨두는 역할 밖에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상처가 또다시 건드려지면 또 단단한 갑옷을 입을게 분명하다.
에고는 그저 상처받은 작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여러 겹겹이 만들어낸 또 다른 나이기도 하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나를 망치기도 하는..
어쩌면 '적은 내 안에 있다'라는 말은 이 껍데기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__매너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