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지금은 미지근한 도시 여자일지라도
나는 제주에서 태어났다. 호텔 일을 하셨던 아버지가 결혼 직후 제주 로얄호텔 지배인으로 가시는 바람에 친척 하나 없는 제주가 내 고향이 되었다.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서울 신촌으로 다시 이사를 왔으니 제주에서의 내 기억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구멍이 숭숭 뚫린 시꺼먼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던 흰 파도와 집 근처 코스모스 밭은 또렷이 기억한다.
서울로 온 후 삼십여 년을 수도권에서만 계속 살아왔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학교생활도 학교생활이었지만 또 다른 취미 활동에 빠져서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울에서도 번화하기로 손꼽는 홍대 근방을 전전했었다. 지하철 노선도를 거의 외울 만큼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웬만큼 유명한 서울 맛집은 다 가봤으며 코엑스나 63빌딩, 롯데월드, 예술의 전당 같은 서울의 가볼만한 곳 리스트에 올라 있는 곳들 또한 데이트 장소로 지겹게 애용했다. 차가운 도시 여자는 바로 나였다. 최신 유행을 좇았고 진한 화장에 화려한 복장으로 이 나라에서 제일 큰 도시를 마음껏 즐기며 이십 대를 보냈다. 서울의 치열함과 뜨거움이 좋았고, 시끌벅적하고 북적이는 공간이 즐거웠다.
언제부터였을까, 도시가 싫어진 것은.
스물여덟이 되던 해에 나는 전공이 아닌 다른 분야를 처음부터 공부하게 되었다. 나에겐 아주 큰 의미의 새로운 도전이었고 결과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공부를 마칠 즈음 함께 공부했던 동료들과 지리산 둘레길로 짧은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6월이었고 적당히 더웠으며 돌담에 핀 장미는 아름다웠다.
한 코스를 정해 걷기로 했다. 그저 별생각 없이 첫 발걸음을 내디뎠던 나는 코스가 끝난 지점에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시골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굽이굽이 좁은 시골길을 걷기 시작한다. 제멋대로 핀 이름 모를 들꽃들을 지나 제법 가파른 산길도 오른다. 나름 따가운 6월의 햇살을 짙푸른 나무들이 가려주면 걸음을 멈춰 서서 땀을 닦으며 심호흡을 한다. 산속 계곡이 보인다. 양말을 벗고 유리처럼 맑은 물에 발을 담그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평상에 걸터앉아 탁주 한 잔에 목을 축이고 파전을 나누어 먹는다. 그리고 다시 시골길을 걷는다.
다섯 시간쯤 걸었을까, 종착점이 보인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아주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펜션 사장님의 픽업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큰 나무 옆 벤치에 앉아 그림같이 아름다운 마을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시골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멍하니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신기하게도 전혀 질리지 않았다.
그날 밤, 바베큐와 함께 기분 좋게 술을 마신 우리는 펜션 마당에 있던 평상에 앉아 밤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시답지 않은 농담을 나누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나도 모르게 아! 소리를 질렀다. 까만 밤하늘에 쏟아질 것만 같은 수많은 별들이 보석같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많은 별들을 본 건 그날 밤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별이 그렇게 밝다는 것 또한 처음 알았다. 동료들이 하나 둘 자러 들어가고 나서도 눈앞이 희뿌옇게 피곤해질 정도로 나는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별을 올려다보았고 다음날 목이 아파 파스를 붙여야 했다.
귓등을 스치던 6월의 바람 냄새가 생생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시골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시골을 갈망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지리산 둘레길은 고성과 여수, 거제, 자월도와 함께 나의 5대 국내 여행지가 되었다.
나를 홀린 것이 언덕 위 큰 나무였을까, 자정 무렵 떨어지던 별똥별이었을까. 중요한 것은 나는 더 이상 차가운 도시 여자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빠른 시일 내에 나는 따뜻한 시골 여자가 되고 싶다. 제주에서 왔으니 웬만하면 다시 바닷가 마을로 돌아가고 싶은 욕심도 슬쩍 부려본다. 시골 여자가 되면 멋들어지게 틀어올린 머리에 예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마당엔 큰 개를 기르고 싶다. 텃밭도 가꾸고 평상도 놓아야지. 날이 좋으면 평상 위에서 붓글씨도 쓰고 요가도 할 거다. 후후. 생각만으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