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엔, 희망을 품는다

에세이

by 이재 다시 원


녹아 없어질 걸 알면서도 한 송이 희망을 손에 쥐었다. 그날 이후, 나는 기꺼이 희망을 품는 쪽을 택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나는 운동장을 건너던 때를 떠올린다. 나뭇가지 위에 얹히지도 못한 눈들. 내 발에 밟히는 눈. 그 어딘가에서 하늘로 다시 돌아가는, 눈.


대학 실기 면접 날이었다. 도시의 겨울은 차가웠고, 눈발은 생각보다 굵었다. 내 손은 빨갛게 얼어 붙어 있었다. 한 걸음마다 온몸이 떨릴 정도였다. 오늘 하루로 내 인생이 결정될 것 같은 기묘한 압박감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수십 번 물었다. "정말, 가야 할까."


몇 년 전, 나는 세상이, 내 삶이 두려워 집 밖을 나서지 않았다. 희망은 커녕 하루하루를 그저 견디는 일에만 매달렸다. 불확실한 미래라는 건 나에게 단순한 단어가 아니었다. 나를 움츠리게 만드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런 불확실성은 종종 희망보다 내게 강하게 적용됐다.


그러나 희망은 이상하게도, 불확실성과 같은 자리에 있다. 실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이 모든 떨림이, 두려움이, 바로 희망이 남겨놓은 그림자라는 걸 깨달았다. 희망은 기쁨의 약속이지만, 그 약속이 온전히 믿어지지 않기에 생겨나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눈 오는 날에 멀리서 반가운 친구라도 왔으면 좋겠듯이, 나도 그 날 내 앞에 나타날 합격이라는 친구를 간절히 기다렸다.


기다림에는 언제나 상상력이 동반된다. 짝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며 손을 맞잡는 장면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 나 역시 합격 후의 봄을, 그 봄의 캠퍼스를, 그리고 그 속의 나를 그렸다. 그러나 이 모든 상상은 망상이 되어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불확실한 기쁨이란, 바로 그러한 양면성을 견뎌야만 하는 감정이다. 한쪽은 설레고, 다른 한쪽은 나를 조여온다. 어쩌면 나는 합격이라는 확실한 증거 없이도 이미 너무 많은 욕심을 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학에 떨어진 이후 알게 되었다. 희망이 결코 안전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우리를 기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 희망을 줄이는 건 쉽다. 아예 기대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설레는 미래 역시 함께 사라진다. 눈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겠다 다짐하듯, 나 역시 불확실성을 견디는 방향을 선택하며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결국, 나는 대학의 문턱을 넘어섰다. 결과가 합격이라는 형태로 나에게 다가왔을 때, 그 기쁨은 단순한 운이 아닌 불확실성을 견딘 시간의 결실이었다.


희망을 품는다는 건, 눈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 일과도 닮아 있다. 녹아버릴 것을 알면서도 그 차가운 아름다움을 잠시라도 느껴보겠다는 마음. 불확실성 때문에 버리면 너무 쉽게 끝나 버리는 감정.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희망은 나를 지키는 방패이자 때로는 나를 흔드는 바람임을. 그 둘은 분리할 수 없기에 의미가 있다. 나무가 있기에 그림자가 생기듯, 기쁨이 있기에 불안이 따라오고, 불안이 있기에 기쁨의 순간은 더욱 깊어진다.

눈이 그치면 만나겠다는 약속 대신, 눈이 내리면 만나겠다고 말하고 싶다. 불확실성 속에서 피어나는 기쁨이야말로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 희망이 없다면 우리는 내일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희망을 품는다. 그것이 얼마나 연약하고, 얼마나 불확실하며, 얼마나 나를 흔들어 놓더라도. 눈 오는 날엔, 그리고 눈이 그치는 날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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