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덜 완벽해도 괜찮다

에세이

by 이재 다시 원

나는 요즘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두렵다. 누군가보다 느리고, 덜 정확하고, 불안정한 나의 손끝이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그럴 때면, 나보다 완벽하게 웃는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의 거울처럼 내 앞에 펼쳐진다. 그 거울 속의 나는 늘 어딘가 삐뚤어진 모습과 부자연스러운 미소로 서 있다.

그런 날엔 모든 게 나를 꾸짖는 것만 같다. 조용한 방의 공기마저 나를 째려보는 것 같다. '이 정도면 괜찮다'는 말은 내게 아무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그때부터 나는 잘하지 못하는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던져진 존재라 칭했다. 완성된 모습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늘 미완의 상태로 세계 한가운데에 갑자기 던져져, 어찌할 줄 모르는 몸짓을 배우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완벽하지 않음은 결함이 아니라 조건이다. 잘하지 못함은 실패가 아닌 출발이다. 그 사실을 잊을 때, 인간은 자기 자신을 향해 폭력을 휘두른다.


나는 자주 나를 향해 잔인해지곤 했다. 잘하지 못한 날엔 나를 자책하고, 남보다 늦은 날엔 나를 처벌했다. 하물며 잘한 날에도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비웃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가 성장했던 시기는, 언제나 부끄러움을 견뎌낸 시기였다.

수치심은 나를 찌르는 감정 같지만, 사실은 나를 깨우는 감정이다. 이건 아니라는 감각이 들어올 때, 나는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을 비로소 떠올린다. 그러니 부끄러움은 실패가 아니다.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첫 번째 울림인 것이다.


니체는 말한다. 인간은 자신을 넘어설 때야 비로소 인간이 된다고. 그 넘어섬은 거대한 업적이 아니라, 오늘보다 조금 더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일이다. 스스로의 비루함을 인정하고도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는 일이야말로 진짜 강함이다.

그러니 잘하지 못하는 나를 미워하는 대신, 그 부끄러움을 잠시 품어보자. 그 감정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며 피하지 말고, 그걸 안고 함께 살아보자. 수치심은 사라지지 않으니 그걸 감당하는 방식을 바꿔보자. 어제는 도망친 것들 앞에 오늘 잠시 멈춰서는, 그렇게 살아보자.

나는 이제 잘하지 못하는 자신을 조금은 사랑하려고 한다. 그 서툼과 불안이 나를 사람답게 만들었다고 믿으려 한다.

누군가의 완벽함은 언제나 남의 빛에서 반짝인다. 하지만 나의 서툼은 나만의 그림자를 만든다. 그 그림자 속에서 나는 조용히 나를 다시 배우는 중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아니, 완벽하지 않기에 살아있다고, 오늘은 그렇게 믿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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