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되풀이 되는가?
'의산문답'은 조선후기 실학자 홍대용이 지은 허자와 실옹의 대화형식의 문답집이다.
호가 담헌인 홍대용은 조선 영.정조 시기의 인물이다. 출신은 요즘말로 금수저에 해당되나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학문과 음악활동으로 세월을 보내다 사신으로 청나라에 다녀오게 된다. 이 후 담헌은 이전의 주자학이나 숭명배청 사고에서 벗어나 당시에는 사문난적이요 이단으로 몰릴 수 밖에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여행을 통해 서양의 과학기술을 접한 후 담헌은 당시 조선의 외연적 개조를 꿈꾸었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 담헌은 거기에 절망하지 않고 내재적 성찰로 방향을 바꾸어 당시 사상계를 지배하던 주자성리학의 주술사회와 기성세력의 저항을 넘어 새로운 과학철학적 안목을 보여준 의산문답을 저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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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의산문답의 번역된 내용과 저자의 해설_책에는 자신의 인생사와 현 시대상과 결부된 뒤집어보기 독후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_을 5개 파트로 담고 있는데 그 내용은 간단히 아래와 같다.
1장 : 경계에 서서 바라보면 당신의 학문도 거짓일 수 있다.
2장 : 만물은 동등하다. 하늘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라.
3장 : 모두가 중심이다. 둥근 지구에 중심세계는 없다.
4장 : 음양오행과 점성술의 미신에서 깨어나라.
5장 : 중화는 없다. 화이론의 허구를 의식하라.
의산문담의 화자로 등장하는 허자와 실옹을 살펴보자.
허자의 세계관과 역사이해는 주자성리학의 바탕을 이루는 전통의 음양오행의 기와 리, 그리고 天圓地方의 자연관과 聖人 중심의 도덕주의 사관에 입각하고 있다. 조선시대 이래로 우리 민족의 정신사에 연연히 흐르고 있는 근본주의 핵심이다. 현실에서 정통과 이단, 문명과 오랑캐가 바둑판 흑백알처럼 뚜렷이 구분한다. 실옹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과 자전을 믿고 이전까지 이단으로 배척해던 도가와 묵자의 사상을 받아들여 인간과 만물이 동등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인식에서도 절대 불변의 규범은 없으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본다. 곧 세상 모두가 중심이며 지역에 다라 문명과 야만, 중화와 오랑케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곧 '화이일야' 라는것.. 저자는 실옹을 청나라 여행 후, 담헌의 변화된 모습, 즉 자기반성과 부정을 통해 새로운 지식인으로 탄생한 자기 의식의 소산이라고 본다. 주자학의 경계를 벗어난 새로운 진리인식을 향한 담헌의 자의식 그리고 자기가 되고 싶은 인물의 사상적 지향점이라는것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논할때 흔히 아쉽게 생각하는 대목이 몇가지 있으니 예를 들어 발해의 멸망과 몽고의 침입, 그리고 병자호란 이후의 북벌실패, 정조의 개혁 동력소실 등이 거론된다. 담헌은 당시 주도적이던 숙명배청이나 주자성리학의 예학논쟁 등의 시대적 입장에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인물이었다. 저자는 주선후기 小中華論과 숭명배청의 북벌론이 인조반정 후 서인과 노론의 지배집단이 자신들의 반정을 합리화하고 외교의 실패로 불러온 호란에 대한 국내의 비판을 무마하여 후대에 전수시키려는 과정에서 나온것으로 본다. 이런 소중화 의식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중화와 오랑캐, 문명과 야먄을 구분하는 논리인 華夷論을 담헌이 문제삼는다. 책의 중심 내용인 만물이 균등하고 둥근 지구는 물론이요 무한한 우주에도 중심 자체가 없다고 말한 것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의 핵심인 '중화와 오랑캐는 똑 같다'는 '華夷一也'를 말하기 위한 포석으로 본다. 저자는 조선후기 대원군의 쇄국정치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남북분단과 대치로 이어지는 현 시대의 역사는 조선시대의 주자성리학과 화이론, 사대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현재까지 이는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이나 근본주의로 사회 곳곳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_근본도 모르는 놈이라느니, 뼈대없는 집안이라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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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의산문답'이 현재 우리 문명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인가?
일찍이 함석헌 옹은 이제 씨알들이 깨어나 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는데, 최근의 수많은 민초들의 촛불 시위가 그 하나의 표본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 우리 한국인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로 저자는 '포용과 화해'를 든다. 우리 사회를 좌.우파로 구분짓는 정치적 갈등, 빈부격차애 따른 계층갈등, 지역갈등, 종교적 대립, 세대,일자리, 비정규직 문제 등 모든 분열과 대립의 근원에는 분단 조국이라는 외형적 요인과 함께 상대를 있는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나만이 옳고 최선이라는 극단적인 자기중심 이기주의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쨋든 세상은 좋든 싫듯 남과 더불어 살아야하고 다른 나라와 교역하며 실아야 하는 세상이다. 이런 시점에서 담헌의 '화이일야'는_옷만 갈아입은 또하나의 근본주의로 흐르지만 않는다면_ 우리 모두가 공동체로서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생존의 처세방식일 것이다.
좋은 책을 읽게 해준 학우에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