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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만다 Oct 21. 2023

#7. 이번엔 내가 뿔났다, 화난 K 장녀

돌이켜 보면 후회되는 순간들

버스 정류장 앞에 서서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버스를 탈 것인가, 아니면 걸어갈 것인가.



탑 오브 잘츠부르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면 버스 정류장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자그문트 툰 협곡까지는 걸어서 40분이었다. 썩 가까운 것은 아니었지만 걷는 걸 좋아하는 가족들이라 혹시나 하고 물어보니 엄마는 물론, 웬일인지 평소에는 걷기 싫어하는 동생까지 걷자고 했다.



나와 남편은 언제나 걷는 건 오케이이므로 그럼 걸어가면 되겠다 하는 순간, 아빠가 말했다.



"나는 버스 타고 갈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기분이 팍 상해 버리고 말았다. 어젯밤에도 얼마 자지 못하고 새벽 일찍 기상해 첼 호수를 한 바퀴 다 돌아버렸다는 아빠였다. 다른 가족이 하루를 시작하기 전부터 거의 두 시간 넘게 혼자 걷다 왔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그럼 “내가 다리가 좀 아프니 걷지 말고 버스를 타고 가자.”라고 솔직히 말하면 되지 않나? 혼자서는 버스를 탈 수도 없으면서 이렇게 말해 버린 아빠가 얄미웠다.



아빠가 저렇게 말하니 버스를 타야 하나 머뭇거리다가 나는 "좀만 걸어보고 힘들면 버스 탈까요?"라고 하자 아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따라나섰다.



한 15분 걸었을까? 해가 뜨거워져 걷기가 힘들었던 우리는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지그문트 툰까지 걸어가는 길은 강을 따라 쭉 펼쳐져 있었는데, 버스는 이 길이 아닌 넓은 도로로 멀리 돌아갔다. 아무래도 이점이 마음에 걸렸는지 아빠는 버스에 내리자마자 내게 "OOO(내 이름), 이렇게 먼 길을 걸어가자고 했어?"라고 했다. 얼굴엔 어색한 웃음과 장난기 어린 목소리였지만 아빠의 그 말이 나는 기분 나쁘게만 들렸다. 마치 내가 일부러 아빠를 고생시키려고 했다는 것처럼 꼬아서 듣게 되었는데 나도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휴대폰의 지도 앱을 열어 우리가 원래 걸어가려던 길과 버스를 타고 온 길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해 줬는데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 넣는다?"



숙소에 있는 오븐을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듯 남편은 고기를 오븐 안에 밀어 넣었다. 계속되는 외식에 질린 남편이 오늘 저녁은 마트에서 고기를 사 와 직접 요리를 해주겠다고 했다. 마침 숙소 부엌에 조리 도구를 비롯해서 오븐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메인 셰프는 남편이라 요리는 남편이 도맡아 했지만 재료 손질이나 테이블 세팅은 내가 했다. 가족들을 위해 밥을 한다고 하니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긴장이 되어 오롯이 요리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갑자기 귀에 거슬리는, 아주 시끄러운 소음이 들려왔다. 사우나를 마치고 온 아빠가 식탁에 앉아 태블릿 PC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백색 소음이다 생각하고 요리에 집중해 보려고 했지만 어째 소리는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시끄러운 소리에 두통까지 생기는 것 같아 나는 아빠에게 소리를 좀 줄여달라고 했지만 큰 소리 때문이 아니었는지 아빠가 소리를 줄였는데도 두통이 가시질 않았다. 한참 뉴스를 보던 아빠는 태블릿 PC를 덮고 엄마에게 말했다. "누워있지만 말고 일어나서 애들 좀 도와줘."



'할 일 없이 뉴스만 보고 있었으면서 도와줄 거면 아빠가 도와주지 왜 누워서 쉬고 있는 엄마에게 난리람?' 나는 더욱 짜증이 났다. 기분이 표정으로 드러나는 걸 항상 경계하려고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이 날도 어쩌면 나는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아빠는 저녁을 먹는 내내 아무 말이 없다가 다 드시곤 “잘 먹었다”라고 한 마디 하시곤 방으로 들어가셨다. (잘 드시긴 했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아빠의 말과 행동인데, 여행 와서 예민해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환경에서 관찰하니 달리 보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날 이후 여행을 마칠 때까지 아빠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고 또 마음에 들지 않아 불만이 쌓여 갔다. 이 불만이 해소된 것은 여행을 다녀오고 한참 뒤의 일이었다.



얼마 전 추석을 앞두고 친정에 내려갔을 때, 다른 식구들은 성묘를 하러 나가고 엄마와 나는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말했다.



"6월에 우리 여행 재밌게 다녀오지 않았냐고 너네 아빠한테 했더니, 글쎄 재미없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물었다. "왜 재미가 없었대?"



"말이 안 통하니까 혼자 뭘 할 수도 없고 뭐 하나 하려고 하면 너네한테 물어보고 해야 하는 게 싫었대. 너네 눈치도 많이 보이고."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아빠가 버스를 타겠다고 했던 이 날이 떠올랐다. 평소 답지 않게 툴툴대던 아빠, 말이 없던 아빠가 왜 그랬는지 그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곤 그날의 내 행동과 표정 하나까지도 후회되었다.










K장녀의 (동)유럽 가족여행 여섯 째 날 코스



탑 오브 잘츠부르크




잘츠부르크 최고봉으로 케이블카를 무려 세 번을 타야 오를 수 있는 곳이다. 한 여름이지만 군데군데 쌓여 있는 눈이 신비로운 곳. 전망대 아래 이 멋진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으니 잠시 머물렀다 가는 것도 좋다.



지그문트 툰 협곡




알프스 만년설과 빙하가 녹은 물이 흐르는 곳으로 클람(Klamm)호수까지 이어진다. 마치 동굴 같기도 한 이곳에서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수를 보고 있노라면 새삼 물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다. 썸머카드가 있으면 입장료가 무료.



유람선




첼 호수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유람선이다. 이 역시 썸머카드가 있으면 무료로 탑승이 가능하다. 다만, 시원한 바람을 쐬며 첼 호수를 구경할 수 있는 갑판 위 테이블은 추가 금액을 내야 이용이 가능하다.



가족 유럽여행 꿀팁!


No. 5. 부모님들이 자녀들과 해외여행을 가면 자녀들 도움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박탈감과 상실감을 느낀다는 사실, 기억해 두세요.

- 영어도 못하고 구글 앱 보기도 쉽지 않으니, 음식 주문하는 것부터 길 찾는 것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한국과는 다른 본인의 처지에 부모님들은 헛헛한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평소와는 다른 말투와 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혹시라도 이때 화를 내거나 짜증 내지 말고, 잠깐 멈춰 서서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해보세요. 괜히 화냈다간 저처럼 후회할지도 모르거든요.





*<K장녀의 (동)유럽 가족여행> 첫 편이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manda/95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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