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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만다 Oct 22. 2023

#8. 본격 수박 겉핥기 여행

온 적 없는 비엔나

이른 아침, 우리 가족은 합스부르크 왕궁이라는 곳 앞에 서 있었다.



내일이면 빈을 떠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오늘은 일찍 움직여 보자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서둘러 숙소를 나와 빈의 유명한 관광지인 합스부르크 왕궁에 오긴 왔는데, 입장 시간이 아직 되지 않아 실내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냥 공원 한 바퀴 보고 나갈까요?"



오늘 이것저것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공원만 둘러보자고 제안하자, 박물관 관람은 질색인 엄마와 동생, 그리고 남편은 '옳다구나'하는 표정을 하곤 공원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따라나섰다.



공원을 둘러보는 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마저도 아빠가 모차르트 동상 앞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느라 10분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5분 안에 나왔을 것이다.



숙소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나왔던 터라 다들 배가 고프다고 했다. 합스부르크 궁전 정원에 있는 출구로 나오니 마침 멀지 않은 곳에 핫도그 스탠드가 있었다. 빈에 왔으면 비엔나 소시지는 먹어 봐야지. 다들 핫도그 하나씩 사들고 가게 앞에 있는 광장 벤치에 앉아 허기를 달래었다.



생각 외로 맛있는 핫도그를 먹으면서 나는 눈앞의 거리와 건물들을 감상했다. '이렇게 예쁜 도시인데, 하루 밖에 구경할 시간이 없다니.' 아쉬운 마음이었다. 동시에 이미 가족들과의 여행에서 지칠 대로 지쳐버린 후라 어서 한국으로 돌아가 뿔뿔이 흩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오늘만 견디면 돼. 좀만 힘내자'



굳게 다짐하는 나였다.






'쟤는 정말 한결같다.'



벨베데레 궁전에 몇 없는 벤치에 앉아 휴대폰 화면을 보고 있는 동생을 보니 이제는 경외심이 들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이곳에서 휴대폰 화면만 보고 있다니 말이다.



기념품 샵에서 쇼핑을 마친 나머지 가족들은 궁전을 구경하기 위해 벤치에 있는 동생과 합류했다. 벨베데레 궁전은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대표적인 궁들 중 하나이다. 상궁과 하궁으로 나뉘어 있는데 빈센트 반 고흐,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등 여러 대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미술관 관람을 사랑하는 나였지만 여기서 그런 제안을 했다간 그 후폭풍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정원만 둘러보자니 벨베데레 궁전도 아침에 갔던 합스부르크 왕궁과 다를 게 없었다.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아름답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다. 사진 한 장 찍지 않는 동생과 엄마를 보면서 빈을 온 게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었고, 내 사진 한 장 안 찍어 주면서 계속 본인 사진을 찍어 달라는 아빠는 귀찮게만 느껴졌다.



하늘을 보니 내 기분과 같았다. 회색 빛 구름이 가득하고 머지않아 비가 올 것 같았다.



순식간에 궁전 관람을 마치고 나왔다.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지금 안 먹으면 애매할 것 같아 벨베데레 궁전 옆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우리가 간 식당은 양조장을 겸하고 있는 레스토랑이었는데, 손님들이 바글바글해 맛집일 것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독일식 족발인 슈바인학센을 주문했다. 엄마는 원래 상태가 쉽게 연상되는 그 형태 때문에 입맛이 떨어졌는지 손도 데지 않았다. 그런 엄마를 보며 왜 해외여행을 왔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숙소에서 한식을 지겹도록 해 먹은 터라 한국에 돌아가도 한식은 며칠 안 먹어도 될 판국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우리는 빈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음악과 예술의 도시 빈을 즐기려면 오페라도 보고 미술관도 관람해야 하는데 우린 시간도, 의욕도 없었다. 우연히 발견한 현대미술관 앞에서 나는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다음에 꼭 다시 올게. 그때 만나자.'



한 것도 없는데 해는 내 속도 모른 채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K장녀의 (동)유럽 가족여행 일곱째 날 코스



합스부르크 왕궁


13세기에 건축된 궁전으로 왕족들이 거주하던 곳이다. 쇤부른 궁전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장이었다면 합스부르크 왕궁은 겨울에 머무는 겨울 궁전이다. 현재는 일부 공간이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고 있어 입장할 수 없지만 이외 공간은 관람이 가능하다.



Bitzinger Sausage Stand




커다란 비엔나 소시지가 들어간 핫도그를 판매하는 핫도그 스탠드. 합스부르크 왕궁 정원에서 나와 길을 따라 걸으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소시지는 오리지널과 매운맛을 고를 수 있는데 우리 가족은 모두 매운맛을 골랐다. 맵찔이가 아닌데도 맵게 느껴져서 오리지널을 맛봐도 충분히 맛있을 것 같다.



성 슈테판 대성당


약 137m 높이에 달하는 대성당으로,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진 장소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답게 뾰족한 첨탑을 볼 수 있다. 다양한 색상의 타일로 꾸며진 지붕이 특색 있다. 유명한 관광 명소답게 많은 한국인을 만날 수 있는 장소.



카페 센트럴




한국인들에게 3대 비엔나 커피로 유명한 곳이다. 가서 보면 알겠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비엔나 커피는 사실 아인슈페너라는 이름이다. 비엔나 사람들은 이 아인슈페너보다는 멜랑지(Melange)라는 우유 거품이 올라간 밀크 커피를 더 자주 마신다고 한다.



벨베데레 궁전


18세기 초에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궁전이다. 커다란 연못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해 넓은 부지지만 사진을 찍고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정원에선 음악회가 열리기도 하는데, 우리 가족이 방문했던 날은 음악회가 있고 이틀 후라 음향 기기들이 치워지지 않은 상태로 다소 너저분했다. 그렇지만 궁전의 아름다움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Salm Bräu




수제 맥주와 가정식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 벨베데레 궁전에서 나오면 걸어서 3분 이내의 거리에 있다. 친절한 직원들의 서비스가 좋았고 음식도 맛있었다.



가족 유럽여행 꿀팁!


No.6. 여행지는 둘러볼 게 많은 곳보다는 한적한 곳으로, 처음 가는 곳보다는 한 번 가본 곳으로


가족들 취향이 잘 맞는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가족 여행에서 내 취향에 맞게 여행한다는 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입니다. 어떤 곳은 아예 나 혼자 따로 다시 와야지 하는 곳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 가족 여행이라면 욕심은 버리고 마음은 내려놓고 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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